11초간 묘기 같은 질주, 수비선수 8명 홀로 제치며 득점
무리뉴 “손나우두 같았다” … 푸스카스상 후보 급부상
손흥민(27ㆍ토트넘)이 70m를 홀로 내달려 득점까지 성공하며 새로운 ‘인생골’을 뽑아냈다. 지난달 차범근(66)이 보유하고 있던 한국인 유럽무대 최다 골(121골) 기록을 넘어섰던 그는, 이번엔 자신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해외선수상 시상을 위해 경기장을 찾은 박지성(38) 앞에서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환상적인 골을 넣으며 현존 한국축구 영웅의 진가를 선보였다. 잉글랜드 현지에서도 선수와 지도자는 물론 해설자들까지 손세이셔널의 원더골에 찬사를 보냈다.
손흥민은 8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번리와 2019~20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16라운드 홈경기에서 프로무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단독질주 득점으로 경기장을 발칵 뒤집어놨다. 전반 30분을 막 넘긴 시각, 토트넘이 2-0으로 앞선 상황에서 손흥민은 수비가 걷어낸 공을 이어받은 뒤 폭풍 같은 드리블로 70m가량 돌파한 뒤 페널티 박스까지 진입해 오른발로 밀어 넣었다. 한해 최고의 골을 터뜨린 선수에게 수여하는 ‘푸스카스상’ 후보로도 손색없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중계화면상 30분55초에 처음 공을 터치한 손흥민의 득점 시각은 31분06초. 약 11초간 이뤄진 그의 질주는 드리블이라기보단 묘기에 가까웠다. 손흥민의 질주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상대 필드플레이어는 7명, 득점 순간까지 그를 쫓던 선수까지 포함하면 8명의 번리 선수를 제친 셈이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대부분 무언가에 홀린 듯 일어서 박수를 쳤다. 이날 토트넘은 손흥민의 1골 1도움 활약 속에 5-0 대승을 거두며 상위권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날 손흥민의 득점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디에고 마라도나(59ㆍ아르헨티나)가 중앙선 부근에서 단독 드리블에 나서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골 지역 오른쪽에서 골을 터트렸던 장면을 뛰어넘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토트넘 감독 무리뉴는 아들의 얘기를 빌어 “‘손나우두’ 같았다”고 했다. 2002 한일월드컵 득점왕이자 브라질 축구역사상 최고 공격수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호나우두(43)에 빗댄 표현이다.
잉글랜드 현지 매체들은 물론 해설자도 극찬했다.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레전드 게리 리네커(59)는 자신의 트위터에 “손흥민이 역대 최고의 골 가운데 하나를 기록했다”며 “내 생각에는 이번 시즌 최고의 골”이라고 감탄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도 “손흥민은 이번 시즌 ‘최고의 골’의 진정한 도전자가 됐다”고 전했다. 이날 손흥민의 득점은 본인에게도 큰 의미다. 정규리그 5호골(7도움)을 기록한 그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5골 2도움) 기록까지 합해 10골(9도움)째를 기록, 4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특히 이날 경기에 앞서 박지성으로부터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국제선수상’ 트로피를 전달받은 뒤 거둔 골이라 더 의미가 크다.
경기 후 손흥민은 “운이 좋았다”면서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운이 좋게 공을 치고 나가는 쪽으로 공간이 생겼다”며 “델리 알리에게 패스하려고 속도를 늦췄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그래서 계속 드리블을 했는데 타이밍과 운이 잘 맞았다”며 득점 상황을 설명했다. 손흥민은 “기회를 만들어준 동료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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