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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늪에 빠진 20대... 지역공동체의 힘으로 살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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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늪에 빠진 20대... 지역공동체의 힘으로 살려내다

입력
2019.12.09 04:40
수정
2019.12.10 14:4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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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사랑의열매 공동기획 ‘나눔이 세상을 바꾼다’] <1> 의료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301 네트워크’

이은진(가명)씨가 경북 구미의 한 편의점에서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이씨는 순천향대 구미병원에서 '301네트워크' 사업의 지원을 받아 2형 당뇨와 합병증 치료를 받고 있다. 최진주 기자
이은진(가명)씨가 경북 구미의 한 편의점에서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이씨는 순천향대 구미병원에서 '301네트워크' 사업의 지원을 받아 2형 당뇨와 합병증 치료를 받고 있다. 최진주 기자

지난 9월 경북 구미의 한 편의점. 매장에 제품을 진열하던 이은진(가명ㆍ24)씨는 갑자기 배를 부여 잡았다. 단순한 위염인 줄 알았으나 내과에선 피검사를 해 보더니 당뇨라며 “당장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K병원에 5일 정도 입원해 식이조절과 인슐린 처방 등 치료를 받고 퇴원하니, 그동안 모은 돈을 입원비로 다 써 버리고 말았다. 돈을 벌기 위해 편의점에 나간 이씨는 그러나 또다시 쓰러져버렸다. 무섭다는 ‘당뇨 합병증’이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이번에는 순천향대 구미병원에 입원해 차례차례 검사를 했다. 이씨는 인슐린 주사를 계속 맞아야 하는 2형 당뇨였지만 평생 이를 모르고 치료를 하지 않아 상당히 악화한 상태였다. 대표적인 합병증인 망막병증으로 오른쪽 눈은 거의 안 보였고 위아래 빠진 이가 10개가 넘었다. 오랫동안 혼자 근근이 살아오며 식사도 제때 하지 않아 건강 상태는 최악이었다.

◇죽는 게 소원이던 20대, 공동체의 힘으로 살아났다

성실하게 일하던 이씨를 아꼈던 편의점 사장 김종열(42)씨는 시청에 의료비 지원을 요청했고, 순천향대병원에서 20년 동안 취약계층 의료복지 지원 활동을 해 온 변정숙 사회사업실장(의료사회복지사)이 나섰다. 지자체와 협조해 다방면으로 도와주겠다고 말했지만 이씨는 이미 절망에 빠져 버린 뒤였다. “세상에 태어나 딱 한 가지 하고 싶은 건 있을 게 아니냐”는 김씨의 설득에 이씨는 “죽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를 도우려는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입원 기간 변 실장은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지원하는 ‘보건ㆍ의료ㆍ복지 301네트워크’의 지원 대상자 명단에 이씨를 올리고 입원비와 외래 진료비 등 의료비 본인부담금을 전액 지원했다. 동 주민센터는 주거급여 신청을 도와주고 월세 15만원의 원룸을 구해줬다.

퇴원한 후 이씨는 301네트워크 지원대상에게 반찬을 무료로 배달해 주는 ‘라운드 키친’ 덕분에 당뇨식 식사도 할 수 있게 됐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우울증 상담을 해줬고, 치과의사 이운철 씨는 편의점 사장 김씨의 이야기를 듣고 10여개의 빠진 이에 무료로 임플란트 시술을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씨는 요즘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며 망막병증 치료를 위한 레이저 치료, 임플란트를 위한 치아 신경치료 등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편의점에선 주말에만 일하며 월 30만원 정도의 벌이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간경화로 입퇴원을 반복하던 33세 김미순(가명ㆍ왼쪽)씨가 거주하는 원룸에서 변정숙 순천향대 구미병원 사회사업실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순천향대 구미병원 제공
간경화로 입퇴원을 반복하던 33세 김미순(가명ㆍ왼쪽)씨가 거주하는 원룸에서 변정숙 순천향대 구미병원 사회사업실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순천향대 구미병원 제공

지난 2일 자신이 일하는 편의점에서 사장 부부 김종열 유지영(36)씨와 변정숙 실장 등 도움을 주는 사람들과 함께 만난 이씨는 밝은 표정이었다. 유씨는 “아팠을 때는 눈도 못 뜨고 표정이 정말 어두웠는데 요즘은 손님들과 농담도 한다”며 대견해 했다. 이씨에 대해 “단골손님이 이사 간다고 하면 자기도 돈이 없는데 커피 한 잔을 사주며 아쉽다고 할 정도로 마음씀씀이가 따뜻하다”고 칭찬했다.

이씨는 가족들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신의 병도 모른 채 살았다. 이씨의 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독립했고, 어머니마저 고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다. 이씨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로부터 탈출하듯 집을 나왔고, 멀리 떨어진 구미의 공장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경기 악화로 공장이 문을 닫자 지난 6월부터 편의점에서 일해 오다 건강이 악화돼 쓰러진 것이다. 부양의무자 확인 차 아버지에게 연락이 가면 자신을 찾아올까 봐 기초생활수급자 생계급여 신청을 못했던 이씨는 며칠 전 동 주민센터에 직접 찾아가 생계급여를 신청했다. 그는 “지금은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용기를 낼 수 있다”며 “가장 힘들 때 기회가 찾아왔으니 전화위복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변정숙(아래 왼쪽) 순천향대 구미병원 사회사업실장이 지난 10월 김대연 동행정복지센터 주무관, 큰사랑요양병원 박남숙 복지팀장 등과 함께 요양병원으로 이송한 환자를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독거노인인 이 환자는 늑골 골절로 순천향대 구미병원에서 급성기 치료를 마친 후 요양병원으로 이송돼, 요양등급을 받을 때까지 입원치료비 등을 301네트워크로부터 지원 받았다. 순천향대 구미병원 제공
변정숙(아래 왼쪽) 순천향대 구미병원 사회사업실장이 지난 10월 김대연 동행정복지센터 주무관, 큰사랑요양병원 박남숙 복지팀장 등과 함께 요양병원으로 이송한 환자를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독거노인인 이 환자는 늑골 골절로 순천향대 구미병원에서 급성기 치료를 마친 후 요양병원으로 이송돼, 요양등급을 받을 때까지 입원치료비 등을 301네트워크로부터 지원 받았다. 순천향대 구미병원 제공

◇통합 돌봄 서비스 지원하는 ‘301네트워크’

“죽는 것밖에 소원이 없다”던 이씨가 절망에서 일어난 데는 기초생활수급제도, 건강보험제도 등 기존 복지제도의 역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한마음으로 이씨를 돕겠다고 나선 지역 공동체 구성원의 힘이 컸다. 이 같은 ‘커뮤니티케어(지역사회 통합 돌봄)’를 해 나가는 데 ‘301네트워크’ 지원사업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변 실장은 말한다.

지원 대상 중 신영진(가명ㆍ29)씨는 이씨처럼 젊은 당뇨환자다. 병 때문에 근로 능력도 없는데 치료비로 사채를 썼다가 빚더미에 앉았다. 이미 1년 전부터 투석 치료를 받아야 했으나 돈이 없어 받지 못했던 신씨는 301네트워크의 지원으로 투석 치료를 시작했다. 산정특례 대상이 되면 본인부담금이 크게 줄지만 이마저 낼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이 경제적 부담 없이 투석 치료를 받으려면 장애등급을 받은 후 보건소에서 희귀난치질환 지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장애등급 신청시에 3개월 이상의 당뇨 치료 이력이 있어야 하고 신청 후에도 조사기간이 2개월이 걸리므로 최소 5개월 동안은 의료비 본인부담금이 발생한다. 변 실장은 “일주일에 10만원씩, 한 달에 40만원 정도니까 일반인이라면 큰 부담이 아닐 수 있지만 저소득층은 이 본인부담금조차 없어 산정특례 신청을 못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301네트워크의 의료비 지원은 이렇게 취약계층이 복지 대상으로 신청하고 지원 대상으로 선정될 때까지의 공백 기간에 요긴하게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순천향대 구미병원에서 취약계층 환자에 대해 어떻게 치료와 복지 지원을 할 것인지 에 대해 각과 의사와 행정팀, 간호팀 등이 모여 다학제간 회의를 하고 있다. 맨 뒤가 변정숙 사회사업실장. 순천향대 구미병원 제공
순천향대 구미병원에서 취약계층 환자에 대해 어떻게 치료와 복지 지원을 할 것인지 에 대해 각과 의사와 행정팀, 간호팀 등이 모여 다학제간 회의를 하고 있다. 맨 뒤가 변정숙 사회사업실장. 순천향대 구미병원 제공

순천향대 구미병원 사회사업실은 올해 1억원 규모로 301네트워크 지원을 받아 취약계층 의료비, 간병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58명에게 평균 152만원가량을 지원했다. 지원 금액이 많지 않아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정말로 긴요하게 쓰였다. 얼마 전에는 생활고로 고통을 겪다가 지적장애 21세 아들의 수급자 탈락 후 절망해 유서를 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모자를 도왔다. 치료비와 무료 반찬 배송 등을 301네트워크로 지원하고, 생계급여는 탈락했지만 차상위계층에 맞는 맞춤형 복지를 지자체에 요청해 주거와 의료급여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육체적으로 덜 힘든 자활근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랑의열매는 ‘301네트워크’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발굴해 돕는 ‘고독사 예방을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 사업에 연말연시 모금운동 ‘희망2020나눔캠페인’의 모금액(목표 4,257억원)의 65.6%를 사용하겠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올해 들어 ‘탈북민 모자 아사’ 사건과 ‘송파 세 모녀’ ‘성북동 세 모녀’ 사건처럼 생활고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빈번해졌는데, 취약계층을 발굴해 긴급 생계비, 의료비를 지원하고 돌봄네트워크를 강화해 이 같은 비극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희망2020나눔캠페인은 내년 1월 31일까지 계속된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사랑의열매 지원 사업소개

△사업명: ‘보건․의료․복지 301네트워크’

△사업기관: 대한의료사회복지사협회

△사업취지: 의료사각지대 해소를 통한 건강권 증진사업

△사랑의열매 지원규모: 15억원

※한국일보와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연말연시 국민 나눔운동인 ‘2020 희망 나눔 캠페인’에 대한 국민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공동 기획기사 ‘나눔이 세상을 바꾼다’를 5회에 걸쳐 싣습니다. 캠페인으로 모인 기금은 장애인, 취약계층 등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을 발굴해 이들에게 생계비, 의료비는 물론 일자리와 주거 등을 지원하는 데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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