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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레터] “88만원 시니어 세대” 학교 경비원 편지 읽어보실래요?

입력
2019.12.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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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 감옥’ 같은 열악한 당직실…잠들만 하면 화재경보 울리고”

“예산확충 없이 정규직 전환, 일자리 쪼개다 벌어진 사달” 지적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말 부산의 한 고등학교 격일제 상주 경비원 채용공고가 화제가 됐습니다. 급여는 ‘월 87만원’. 학교에 상주하는 시간은 많은데도 휴게시간의 절반 수준만 근로시간으로 적용한 탓이죠. 온라인에서는 “88만원 세대 시니어 버전이냐”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관련기사 월급 87만 원에 상주 경비원 뽑으려 한 고등학교

논란이 일기 시작하면서 경비원, 즉 여러 학교의 ‘당직전담사’들로부터 “전국 학교가 이런 실태”라며 열악한 현실을 토로하는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편지를 보낸 경비원들 모두 부산여고와 거의 같은 조건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오늘을 살고 있을까요, 그리고 무엇이 이 같은 노동환경을 만든 것일까요? 함께 편지를 읽어주시겠어요?

◇2교대 경비원 근무가 어떻길래?

#오후 4시30분. 출근한 경비원 A씨는 1시간 반 동안 학교 전체를 순찰하며 특이사항을 점검한 뒤 2시간의 휴게시간을 맞이합니다. 좁은 당직실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찰나, 학교를 찾아온 택배기사 등 민원인이 문을 두드립니다. 학생ㆍ교사들의 이런저런 부탁을 들어주고 식사를 하다 보면 몇 차례의 휴게시간은 어영부영 지나가버립니다.

#오후 10시. 학교 문을 닫고 잘 시간이 됐지만 기숙사에 사는 고3 학생들은 공부를, 교사ㆍ행정실 직원들은 업무를 한다고 아직 학교에 남아 있어 문을 잠글 수 없습니다. 협조를 구해보지만 내쫓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휴게시간을 넘긴 0시가 돼서야 학교 내 모든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한 A씨는 보안장치를 걸어 잠그고 교직원 화장실에서 대충 씻은 후 당직실에서 눈을 붙입니다.

#잠이 들려는 찰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시험을 앞두고 참고서를 두고 왔다는 학생입니다. 차마 돌려보낼 수 없어 A씨는 다시 문을 열고 학생을 들여보냅니다. 고맙다는 학생을 뒤로 하고 폐쇄회로TV(CCTV) 모니터가 즐비한 당직실에서 다시 눈을 붙이려는 순간 이번엔 갑자기 쩌렁쩌렁 화재경보기가 울립니다. 놀란 마음에 확인해보지만 오작동입니다. 긴장한 A씨는 오늘도 쉽사리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잠자리를 설친 A씨는 오전 7시 다시 학교의 아침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부산여고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보통 평일은 오후 4시 30분 출근해 다음날 오전 8시 30분에 퇴근하지만 근로시간은 6~7시간, 공휴일은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8시 30분에 퇴근하지만 근로시간은 9시간만 인정됩니다. 휴게시간이 근로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평일 9~10시간, 주말 15시간으로 잡혀있기 때문입니다. 휴게시간이 과하게 책정된 데다, 각 학교당 2명을 채용해 2교대 격일제로 운영하고 있죠. 그렇다 보니 급여는 월 88만원이 채 되지 않아 생활이 어려운 수준입니다.

부산여고에서 지난 25일 게재한 경비원 채용공고. 부산여고 공식홈페이지
부산여고에서 지난 25일 게재한 경비원 채용공고. 부산여고 공식홈페이지

◇다른 학교 경비원들은 어땠는데?

휴게시간에 어차피 일을 안 하니 그 정도 받아도 문제 없다고요? 교육청은 “휴게시간에 상주 의무가 없고 자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하지만 경비원들의 말은 다릅니다. 휴게시간에는 학교 밖 이동 금지 지침이 현실이고, 업무와 취침을 같이 하는 당직실은 열악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한 경비원은 당직실 24시간 근무를 ‘독방 감옥’이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경남 거제의 한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Y씨는 “휴게시간에 집에서 쉬었다 오겠다고 하니 학교에서 안 된다고 했다”며 “당직실 전화기는 언제 울릴지 모르고, 식당 관리자 등 한 명이라도 보안장치를 잘 하고 가지 않으면 취침하던 중이라도 보안업체 담당자가 당직자를 찾는다. 주말에도 택배나 시설수리ㆍ설치 작업자가 오고 교사ㆍ학생들이 수시로 들락날락하니 당연히 안 될 것”이라 한탄했습니다.

인천의 또 다른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C씨도 “평일 오후 4시 반 근무에 들어가면 사실상 다음날 오전 8시 반까지 계속 근로하는 것”이라며 “기숙사가 있는 학교는 학생들이 새벽 1시가 넘어 이동하는 경우도 많고, 문이 하나라도 열려있으면 보안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매번 점검해야 한다. 휴게시간이라도 학생ㆍ교사가 부탁하면 다 해줘야 하는데, 임의로 휴게시간을 정해놨지만 일상적으로 피드백을 해야 하기 때문에 쉴 수가 없다”고 동감했습니다.

휴식을 취하는 당직실 환경은 어떨까요? 현장에서는 사실상 휴게장소와 근무장소가 같고,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휴식을 취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Y씨는 “보안장치 소음과 CCTV 모니터, 기계장치 램프 등으로 수면을 취할 수 없을 정도인 데다 간헐적으로 내ㆍ외부인이 출입하고 화재경보기 오작동이 잦아 조용한 집에서 휴식하고 싶어하는 것”이라 설명했습니다. 당직실에 세면시설과 화장실을 갖추지 못한 학교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법적으로 문제가 있어?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는 없습니다. 학교 경비원은 근로기준법 63조의 3항 ‘감시 또는 단속적으로 근로에 종사하는 자’로서 일반적인 근로ㆍ휴게시간 적용에서 제외되기 때문이죠. ‘감시ㆍ단속적 근로자’는 근로가 간헐적ㆍ단속적으로 이뤄져 휴게ㆍ대기시간이 많은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뜻합니다.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을 뚜렷이 구분하기 어려운 직종이라는 의미인데요. 사용자가 명시적으로만 휴게시간을 기재하고선 이를 근로시간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대법원은 지난 2017년 아파트 경비원 휴게시간 관련 판례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독립된 휴게공간 제공 여부 △휴게공간이 아닌 근무초소에서 보내는 휴게시간이 자발적 의사에 의한 것인지 △휴게시간에 지휘ㆍ감독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휴식ㆍ수면을 취했는지 △휴게시간에 순찰 등 업무로 방해받지 않았는지 등이 포함됩니다.

앞서 학교 경비원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 같은 기준이 충분히 지켜지지 않고 있는 듯 한데요. 한 경비원은 이와 관련해 교육청에 질의하기도 했지만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이 담긴 답변을 받았다고 합니다. 고용노동부는 ‘일정 구역을 벗어날 수 없는 등 다소 장소적 제약이 있더라도 사용자의 지휘ㆍ감독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한 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인정하고 있는데요. 휴게시간이더라도 자의와 상관없이 일정 구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으로, 대법원의 판례와 해석이 어긋납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의 기본원칙과 방향. 고용노동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의 기본원칙과 방향. 고용노동부

◇그래도 87만원은 너무하지 않아?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현장에서는 2017년 문재인 정권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정책’을 시행하면서 문제가 됐다고 봅니다. 용역ㆍ파견근로자였던 경비원을 교육청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이라는 거죠. 정부 차원에서 주 52시간제 도입과 함께 일자리 창출을 독려했지만 예산은 늘리지 않았고, 교육청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기존 일자리를 쪼개 인원 수를 늘리면서 오히려 급여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운 질 낮은 일자리를 만든 셈이라는 것입니다.

지난해 9월 각 시도교육청에 파견ㆍ용역 근로자 정규직 전환 관련 공문이 내려옵니다. 당직근무자 근무환경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말이죠. “당직업무 2교대에 대해 학교 예산 사정을 고려해 기존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 2교대 근무 가능할 경우 적극 권장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월급이 200만원 선이던 1인 근무체제에서 90만원 선인 2인 교대 체제로 바뀌자 머릿수는 늘어났지만, 실제 휴게시간 등 처우는 개선된 것이 없고 오히려 급여가 낮아져 ‘근무환경개선’이라는 목적은 무색해졌습니다.

현장에서는 불만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신(新)중년에 속하는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을 모집 대상으로 하는 2교대 근무는 열악한 급여 조건 때문에 모집이 안 되고 있고, 기존의 65세 이상에서 75세에 해당하는 1인 근무자는 급여 하락을 이유로 2교대 전환을 원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정부에서는 “정년을 보장했다”며 이들을 ‘정규직’이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무기계약직’ 신분으로 비정규직에 가까운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경비원들에게는 교육 공무직 근로자에게 제공되는 가족수당ㆍ자녀 학비 보조금 등도 지급되지 않는 데다, 교통비ㆍ명절 휴가비 등도 차등 적용됩니다. 법적으로 유급휴일인 근로자의 날 수당 또한 지급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감시ㆍ단속적 승인을 받은 근로자라 해도 근로자의 날에는 유급휴일로 보장된다”는 행정해석을 내놨지만 학교 측에서는 답변이 함흥차사라고 합니다.

지난달 민주노총과 정의당에서 주최한 ‘중앙행정기관 공무직 차별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에서도 같은 문제점이 지적됐습니다. 이 토론회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017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발표하고 추진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실질적인 처우는 크게 달라진 게 없고, 정책과 예산 편성 기준이 실종된 상태에서 오히려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을 포함한 비정규직 임금 격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동규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조직국장은 6일 한국일보 통화에서 “교육청에서는 감시ㆍ단속적 근로자라는 이유로 권리를 최소한으로만 해석하는데, 특히 경비원들은 고용ㆍ처우가 가장 열악한 노동자 중 하나로 불필요하게 책정된 휴게시간부터 줄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정부는 정규직이라 표현하지만 정말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들이라면 학교 내 모든 구성원들이 받는 정기상여금, 가족수당 등에 대한 차별도 점진적으로 없어져야 할 것”이라며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때마다 다른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들어 채용하려는 사고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편지를 보낸 경비원들은 “정부는 중장년 일자리를 늘렸다고 하지만 이런 악조건으로 일자리가 늘어났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진정 정규직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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