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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유명을 달리하다

입력
2019.12.09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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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뱅크 코리아
게티이미지 뱅크 코리아

우리말에는 죽음을 완곡하게 이르는 관용 표현들이 많이 있다.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직설적으로 ‘죽다’라고 말하지 않고 ‘고동을 멈추다’ ‘돌아가다’ ‘목숨을 거두다[잃다]’ ‘세상을 떠나다[하직하다]’ ‘숟가락을 놓다’ ‘숨을 거두다’ ‘이승을 떠나다[하직하다]’ ‘잠들다’ ‘저승에[천당에] 가다’ ‘한 줌의 재가[흙이] 되다’ 등으로 부드럽게 돌려서 말함으로써 고인의 명복을 빌고 듣는 사람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완곡 표현들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우리말에는 죽음을 이르는 한자어 표현들이 많은데, ‘세상과 이별하다’를 뜻하는 ‘별세(別世)하다’ ‘영원히 잠들다’를 뜻하는 ‘영면(永眠)하다’ ‘고인이 되었다’를 뜻하는 ‘작고(作故)하다’ ‘인간계를 떠나서 다른 세계로 가다’를 뜻하는 ‘타계(他界)하다’ ‘목숨이 끊어지다’를 뜻하는 ‘운명(殞命)하다’ ‘죽어서 세상을 떠나다’를 뜻하는 ‘사거(死去)하다’와 이의 높임말인 ‘서거(逝去)하다’ 등이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죽다’의 의미로 말할 때 ‘초인간적인 힘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뜻하는 ‘운명(運命)’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운명을 달리하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우리말의 관용 표현에 존재하지 않는 말이다.

‘운명을 달리하다’ 대신에 ‘유명을 달리하다’라는 말이 국어사전의 관용구에 등재되어 있는데, 여기서 ‘유명’은 한자로 그윽할(검을) 유(幽)와 밝을 명(明)자로 이루어져 저승과 이승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그리하여 ‘유명을 달리하다’는 저승과 이승의 상황을 다르게 가진다는 말이 되어 이승과는 다른 저승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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