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만에 들른 분식집에서 늘 먹던 비빔국수 대신 오징어볶음밥을 시켰다. 이 식당에서 제일 비싼 6,000원짜리 메뉴다. 주문 내용을 들은 주방 담당 할머니의 표정에 잠시 당황하는 기색이 스쳤다. 어제 저녁에 사둔 볶음용 오징어가 일찌감치 동났다고 했다. “그러게 왜 이리 점심을 늦게 먹는겨.” 할머니가 우리를 가볍게 책망했다. 그러고는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가더니 세 집 건너 생선가게에서 생물 오징어를 급히 공수해 오셨다. 탁탁탁탁. 느긋한 도마 소리에 이어 가스레인지 불이 켜지고, 오징어볶음 익어가는 냄새가 진동할 때쯤 할머니는 접시에 반찬을 담기 시작했다. 시래기무침, 콩나물무침, 코다리조림, 무장아찌. 일흔 넘은 주방장 할머니의 시그니처 밑반찬이다. 40년 넘게 이 분식집 주방을 책임져 왔다고 하니, 아마 반찬 맛의 이력도 그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 튀김도 한 접시 주세요.” 입구 쪽, 튀김을 담당하는 아주머니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30초쯤 기다리자 오징어다리와 몸통, 고구마, 야채로 구성된 튀김 한 접시와, 그 사이 완성된 오징어볶음밥이 동시에 테이블로 올라왔다. 평소보다 늦은 점심상을 받은 우리는 흡사 오랜만의 정찬에 임하는 사람들처럼 먹는 일에 열중했다.
이 동네로 회사를 옮긴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부동산계약서에 서명을 하던 날, 30대 초반의 여성 중개인이 나에게 말했다. 지리적 특성이며 생활 편리성이며 이곳이 두루 만족스러울 테지만 단 하나, 점심값이 많이 들지나 않을지 걱정이라고. “여기 상가에 있는 식당들 음식 값이 정말 눈알 튀어나올 정도로 비싸요. 김밥 한 줄에 4,000~5000원씩 하니까 말 다했죠, 뭐.” 너무 높은 상가 월세를 맞추려면 가게들로서도 어쩔 수 없겠지만, 1만원 안쪽 메뉴를 찾기 힘든 마당이라 자기는 집에서 만들어온 샌드위치나 주먹밥으로 점심을 해결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말 그랬다. 해물탕 한 그릇도, 내가 특히 좋아라 하는 우동정식 세트도 1만원을 훌쩍 넘었다. 천연발효종으로 빵을 만들어내는 가게 주인은 친절하고 빵맛도 아주 좋았지만 얇게 자른 식빵 여섯 개들이 한 봉지가 5,500원이었다.
그즈음 우리 눈에 들어온 선택지가 큰길 건너 재래시장이었다. 가끔 들러서, TV 프로그램에도 자주 소개된다는 명물 꽈배기나 떡볶이만 사먹고 나오던 곳. 꼼꼼히 살펴보니 그 안에 제법 많은 식당들이 숨어 있었다. 시간대에 상관없이 긴 줄이 이어지는 칼국수 가게는, 놀랍게도 손칼국수 한 그릇 가격이 2,500원이었다. 들어가서 먹어본 결과,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 식당의 비기(秘技)는 힘 좋은 청년이 현장에서 반죽을 치대 뽑아내는 면발에다 구수한 멸치육수인 듯했다. 가성비의 진정한 승리랄까? 요일마다 다른 국과 찌개를 한 솥 가득 끓여서 6,000원짜리 ‘오늘의 백반’으로 내놓는 식당도 만만찮은 경쟁력을 뽐내고 있었다. 이 식당 주인장 역시 한 자리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이어왔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의 발길은 점점 더 자주, 큰길 건너 재래시장 쪽으로 향하게 됐다.
생물 오징어에다 양파와 배추, 대파까지 왕창 때려 넣은 볶음을 싹싹 비워가며 점심을 먹은 우리는 시장통을 어슬렁거리며 따끈한 두부와 양배추, 쪽파를 샀다. 그렇게 해서 오늘 점심시간에 지출한 돈이 도합 2만원. 장본 것들을 양손에 들고 희희낙락 횡단보도를 건너 사무실 쪽으로 향하는데 손님 없는 매장을 혼자 지키고 섰던 빵가게 사장과 눈이 딱 마주쳤다.
아이고, 이걸 어쩌나. 죄지은 사람처럼 허둥대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서 식빵 한 봉지를 샀다. 그녀가 묻지도 않았는데, 내일 아침에 토스트 해먹으려고 시장에서 양배추 사오는 길이라고 둘러대면서 말이다.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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