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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 연구로 박사가 된 저자 “혐한 용어는 1992년 첫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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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 연구로 박사가 된 저자 “혐한 용어는 1992년 첫 등장”

입력
2019.12.06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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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5일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의 한 거리에서 우파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한국에 대한 혐오 감정을 우회적으로 조장하는 피켓과 일장기를 들고 행진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6년 6월5일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의 한 거리에서 우파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한국에 대한 혐오 감정을 우회적으로 조장하는 피켓과 일장기를 들고 행진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혐한의 계보 

 노윤선 지음 

 글항아리 발행ㆍ304쪽ㆍ1만5,000원 

혐오가 비즈니스가 된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그렇다. 한국을 비하하거나 욕하는 책을 내놓으면 바로 베스트셀러가 된다. ‘한국이라는 병’ ‘한국 대파멸 입문’ ‘문재인이라는 재액(災厄)’ ‘망상대국 한국을 비웃다’ 등 책 제목만으로도 선정적이다.

책뿐 아니다. 방송이나 잡지 등에서 한국을 혐오의 대상으로 몰아붙이면 시청률이 오르거나 판매 부수가 급증한다. ‘혐한(嫌韓) 비즈니스’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일본 우익 월간지 윌의 이달 표지 제목은 ‘문재인, 너야말로 오염수다’다. 한국 정부가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에 우려를 표한 것에 대한 저열한 대응이다.

공중파 방송이라고 다르지 않다. 일본의 유명 코미디언이자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北野武)는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 정치인 사진을 보고선 “저 동과(호박 종류) 좀 어떻게 안 되나. 삶아 먹으면 맛있겠다”고 말했고, 일본군 위안부 동상에 대해선 “가슴이 처졌다”는 막말을 했다. 주한일본대사를 지내고선 혐한의 한 상징으로 떠오른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는 요미우리TV에 출연해 “영화 ‘1987’은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 정치적 의도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본다”라고 밝혔다. ‘1987’은 박근혜 정부 시절 극비리에 기획된 영화다. 한국 사정을 잘 알 만한 인사가 가짜뉴스를 퍼뜨린 셈이다.

‘혐한은 일본에서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일부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혐한 현상은 조금씩 몸집을 키우고 있다. 일본인들이 혐한에 점점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은 혐한의 뿌리를 들추면서 다각도로 혐한 현상을 살핀다. 혐한이라는 말은 1992년 마이니치신문 3월 4일 자 기사에서 처음 사용됐다. 기사는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인식 부족을 지적하며 일본인의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을 다뤘지만, 혐한은 이후 부정적인 용도로 쓰였다. 혐한은 20세기 말에 첫 등장했으나 저자는 혐한의 정서를 일본의 역사에서 찾는다. 일본은 뿌리 깊은 차별의 사회로, 부락민이라는 28종의 불가촉천민이 1,000년가량 존재해 왔다. 오랜 역사와 제도를 통해 ‘정상적인 것의 정체성’을 구축해 오면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이 일본인의 뇌리에 스며들었다고 주장한다. 일본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바탕으로 한국에 대한 우월의식을 키우고, 한국 정벌을 당연시 여겼던 일본제국 초기 인사들의 인식과도 무관치 않다고 본다.

책에 따르면 혐한 현상은 2002년 한일월드컵 무렵 힘을 얻기 시작했다. 한국 축구가 4강에 올라가고, 일본 축구가 16강에서 탈락하면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분노가 끓어올랐다. “한국들은 매너가 없다” “심판을 매수했다” 등의 비난이 나왔다. 고도성장의 행복을 누린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는 현재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고 ‘불안형 내셔널리즘’이 형성되면서 혐한의 불길은 커졌다.

2012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일본 왕의 사죄를 요구하면서 혐한은 절정을 향했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도 무관치 않다. 엄청난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누군가를 향한 증오는 더욱 커졌고 혐한 정서는 강해졌다. 2009년 30건이었던 혐한 시위는 2011년 82건, 2012년 301건으로 급증했다. 저자는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바탕으로 일본인이 재일조선인 6,066명을 학살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일본 보도를 인용하며 혐한이 나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본다. ‘혐한의 양상은 거한(拒韓ㆍ한국 거부)에서 애한(哀韓ㆍ불쌍한 한국)으로, 이제는 치한(嗤韓ㆍ한국 조롱)으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려대 일문학과에서 논문 ‘일본 현대문화 속의 혐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혐한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은 처음이다. 책은 앞의 논문을 근간으로 최근 혐한 현황에 대한 전체적인 지형도를 더했다. 극일, 지일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많고도 크지만 혐한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글은 없는 상황에서 일본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혐한의 계보. 글항아리 제공
혐한의 계보. 글항아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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