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드레스 입은 왕자 “그래, 이게 바로 진짜 나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드레스 입은 왕자 “그래, 이게 바로 진짜 나야”

입력
2019.12.06 04:40
23면
0 0
그림 1왕자와 드레스 메이커. 비룡소 제공
그림 1왕자와 드레스 메이커. 비룡소 제공

1000만 관객 고지를 눈앞에 둔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는 개봉 전부터 주인공 엘사와 안나의 ‘바지 의상’으로 화제가 됐다. 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레깅스를 입은 엘사는 절벽을 기어오르고, 물의 말을 타고 거침없이 바다를 가로지른다. 왕자가 키스로 자신을 깨워 주기만을 기다려야 했던 백설공주나 탑에 갇혀 왕자의 구출을 기다리던 라푼젤과 달리,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를 벗어 던진 오늘날의 공주들은 직접 위험과 맞서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간다.

그렇다면 왕자는 어떨까? ‘백마 탄 왕자’라는 수식에서도 드러나듯 동화나 디즈니 만화 속 왕자는 공주만큼이나 정형화된 모습으로 그려졌다. 훤칠한 키에 훈훈한 외모, 늠름함을 갖춘 왕자는 위기에 빠진 공주를 구하고, 왕국을 적들의 위협에서 구해 내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만일 왕자가 ‘왕자다워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젠 왕의 그래픽노블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는 드레스 입기를 사랑하는 왕자 세바스찬과 디자이너를 꿈꾸는 재봉사 프랜시스가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고 진짜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근대 시작 무렵, 벨기에 왕의 유일한 아들이자 왕위 계승자인 세바스찬 왕자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여성들이 입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을 때 비로소 ‘자신답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되면 자신을 수치스러워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지만, 세바스찬은 드레스를 좋아하는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재봉사 프랜시스는 이런 세바스찬의 은밀한 소망을 실현시켜 주는 인물이다. 의상실의 말단 재봉사로 일하던 중 프랜시스만의 파격적인 디자인에 반한 왕자가 자신의 전담 디자이너로 고용하면서 둘은 디자이너와 모델 파트너로 활약하게 된다.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개성 넘치는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프랜시스의 디자인은 곧 파리 사교계를 휩쓴다. 프랜시스의 드레스를 입고 ‘크리스탈리아’로 다시 태어난 세바스찬 왕자 역시 사교계의 유명 인사가 된다.

그러나 왕자는 언젠가는 공주와 결혼해 나라를 이끌어야만 하고, 왕자의 숨겨진 디자이너로 사는 프랜시스 역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디자이너가 될 수 없다. 왕자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만 하는 현실 앞에서, 프랜시스는 결국 왕자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프랜시스를 잃고 나서야 왕자는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된다.

왕자와 드레스 메이커. 비룡소 제공
왕자와 드레스 메이커. 비룡소 제공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모습으로 서기 위해 어려운 선택을 내리는 두 주인공과 이들 사이의 우정과 사랑은 전 세계 독자를 감동시켰다. 지난해 워싱턴포스트가 ‘최고의 그래픽노블’로, 퍼블리셔서 위클리가 ‘올해 최고의 책’으로 꼽는 등 각종 ‘최고’ 자리를 휩쓸었다.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아이스너상에서 최고의 작가와 최고의 청소년책 2개 부문을 수상하고 앙굴렘 국제 만화페스티벌에서 ‘젊은 독자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책을 번역한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내가 어디에서 누구로 태어날지를 결정할 수는 없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노력하면 알 수 있다”며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는 좀 더 멋진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평했다. 청소년 대상 만화지만, 좋은 만화가 으레 그렇듯 성인이 읽기에도 손색없는 탄탄한 완성도와 재미를 모두 갖췄다. 프랜시스가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친 아름다운 드레스 그림 역시 보는 눈을 즐겁게 한다.

최근 ‘겨울왕국2’ 홍보를 위해 내한한 제작진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위험이 도사리는 마법의 숲에서는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의상이 필요했고, 실용적인 바지가 편하다고 생각했다. 디자인을 할 때 ‘이걸 입을까 말까’ 질문할 필요조차 없었다.” ‘겨울왕국2’을 본 소녀들은 더 이상 ‘드레스’를 공주의 기본 의상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자연스레 많은 소녀에게 성 역할의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우리에게 더욱 많은 ‘드레스 입은 왕자’와 ‘바지 입은 공주’가 필요한 이유다.


 왕자와 드레스메이커 

 젠 왕 지음ㆍ김지은 옮김 

 비룡소 발행ㆍ288쪽ㆍ1만6,000원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