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변화’와 ‘혁신’이 필수로 자리잡았다. 시대의 화두라 할 수 있는 4차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도 결국은 미래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도구이다. 미래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 농업이다. 산업화를 거치며 농업에 대한 전 사회의 의존이 줄었지만, 그 중요성이 감소한 것은 아니다. 최근 농업 분야에서도 스마트팜이 등장하고, 경작에 드론이나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활용하는 등 혁신적 변화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 농촌이 얼마나 변화했는지 살펴본다.
국가 경제발전은 농업과의 이별 과정
농업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인류가 수렵ㆍ채집 생활을 끝내고 농업혁명을 시작한 것은 약 1만년 전이다. 그때부터 농업은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원천이 됐다. 먹거리(食) 대부분이 농업에서 나왔고, 입을 거리(衣)와 잠잘 곳(住)을 제공하는 재료와 에너지도 주로 농업에서 공급되었다. 잉여 농산물은 계급과 정치의 출발이 됐고, 문화와 예술의 토대가 되었으며, 지정학적인 농업 생산력의 차이는 전쟁과 불평등을 촉발했다. 인류가 가진 모든 것은 농업에서 시작된 것이다.
농업이 모든 것의 시작이지만,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경제발전은 농업과 이별 과정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은 농업 자본과 노동력이 제조업으로 이동하는 탈농업 과정이며, 20세기 정보화 혁명은 제조업의 자본과 노동력이 서비스업으로 옮겨가면서 완성됐다. 농경시대에서 시작해 산업화 시대를 거쳐 지식정보화 시대와 4차산업혁명 시대로 발전할수록 농업에는 최소한의 생산 인구만 남게 됐다. 1862년 링컨 대통령이 미국 농림부(USDA)를 만들면서 ‘국민의 부처’(The People's Department)라고 불렀는데 당시 미국 생산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 농업 생산인구 비중은 3%가 되지 않는다.
한국도 1962년 농촌진흥청을 만들 당시 인구 2,300만명 중 농업인구가 1,900만명이었지만, 현재는 전체 인구대비 5% 미만이다. 1970년대 50%가 넘던 국내총생산(GDP) 중 농업의 비중도 계속 하락하여 이제는 2% 정도이다. 독일 일본 영국의 농업 GDP 비중은 1%, 농가인구 비중은 2% 정도인데, 한국도 같은 경로를 밟아가는 중이다.
농가인구 고령화ㆍ공동화, 극복할 최대과제
한국은 전 세계에서 농가인구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2018년 기준 한국 농가경영주 평균연령은 67.7세다. 2000년 58.3세에서 불과 20년 만에 열 살이나 고령화했고 조만간 일본의 72.5세와 비슷해질 것이다. 특히 40세 미만 농가경영주 비중이 0.7%밖에 안된다. 농촌은 일할 사람이 없는 것을 걱정해야 할 단계를 지나 마을이 통째로 비어가는 공동화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 됐다.
그 가운데 점점 각박해지는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농촌으로 돌아가는 ‘귀농’이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1990년 이후 전체 언론 기사에서 귀농 관련 뉴스의 비율을 찾아보면 그런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전체 농가 숫자는 해마다 꾸준히 줄고 있지만, 귀농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1998년을 기점으로 급증했고, 2008년 이후 다시 한번 주목받으며 지속적 증가세를 나타냈다. 두 시기 모두 경제 위기 발생 시점과 일치한다. 1998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가 그것이다. 물론 귀농은 자발적 선택이 많겠지만, 경제적 어려움 등 구조적 압력도 중요한 원인이란 점을 시사한다. 자발적이든 어쩔 수 없든 농촌은 언젠가는 돌아갈 곳이란 점을 사람들이 다시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 농가는 영세 소농 중심이다. 경지면적으로 보면 우리 농가 중 1㏊(약 3,030평) 미만의 소농이 전체 70%를 차지한다. 작물마다 차이가 있지만 1㏊에서 연간 평균 농업소득은 약 1,000만원 내외다. 우리 농민의 70%는 농업소득 외에 다른 소득이 있는 겸업농이거나 소액으로도 생계를 이을 수 있는 고령농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5㏊ 이상 농가의 비중도 점차 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기준 5㏊ 이상의 농가는 전체의 3.6%인 3만6,000가구다. 이들은 자가농지와 임대농지를 함께 활용해 영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령화로 폐농인구가 증가하면서 경작자가 없는 농지를 모아 대리 영농하는 대농의 규모와 비중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정보기술 지식을 갖춘 귀농인들이 합류한다면 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라 기대한다.
판매금액별 농가구성비를 살펴보면 우리 농가의 65%는 연간 판매금액이 1,000만원 미만이다. 반면 1억원 이상을 판매하는 부농의 비율은 2018년 기준 약 3.6%이다. 1억원 이상 판매하는 억대농 중에는 선대 때부터 농업을 해온 승계 농 비중이 매우 높다. 이들은 영농의욕과 기술 수준이 높고 농업적 기반도 탄탄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영농규모를 확대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계층이다.
스마트한 농업 강국이 되려면
우리 농업의 구조적 약점을 보완하면서 미래산업으로 전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농업을 스마트하게 만드는 것이다. 농업의 스마트화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이자 과제이다. 전통적인 농업의 핵심 생산요소는 토지와 노동의 결합이었지만 이제 농업은 ‘시설+장비+데이터’ 산업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미국 호주 브라질 등 땅이 넓은 농업국가는 토지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스마트 농업을 전개 중이고, 한국 일본 네덜란드처럼 땅이 좁은 나라는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시설농업과 지능축산 위주로 농업의 스마트화를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 농업은 우리 농업의 미래 노동력 부족 문제 해결에도 가장 유용한 대안이다. 현재 우리 농민 1인당 평균 경작면적은 1.5㏊인데 장차 농민 수가 줄어들면 1인당 평균 경작면적이 증가하는 농업의 규모화가 빠르게 전개될 전망이다. 일본은 농업생산의 규모화가 우리보다 앞서 진행되고 있는데 3㏊ 정도였던 1인당 경작면적이 10~20㏊로 커지고 있다. 1인당 경작면적이 커지면 지금의 농법과 농업기술로는 감당할 수 없다. 작업은 스마트 농기자재와 농기계가 수행하고 데이터에 기반해 농업 의사결정을 내리는 스마트 농업이 필수적이다.
이미 우리 농업 현장에서 시설 원예와 정보통신기술(ICT)이 결합해 경작을 스마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데이터에 의존하는 ‘스마트 팜’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농업생산 현장 스마트화가 정착되면 생산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화를 출발점으로 해 유통과 소비까지 하나의 데이터로 연결하는 가치사슬 확장도 가능해진다. 스마트 기술로 농업을 제어하면 물, 농약, 비료 등을 최적화해 사용할 수 있어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병충해와 자연재해도 지금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농민의 작업 안전도 향상된다. 스마트 팜 확산에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솔루션 등은 새로운 수출 아이템이 될 것이다.
스마트팜 기술이 조기 확산 정착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스마트 농민의 육성이다. 이제 우리 농업도 첨단 지식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귀농 활성화를 통해 젊고 의욕 있는 디지털 세대가 활발히 농업에 진입해 스마트 농민이 되고, 자신의 미래와 행복을 농업에서 찾을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우리 농업은 물론이고 나라의 미래도 밝아질 것이다. 농업은 가장 오래됐지만 가장 오래도록 지속할 산업이다.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성장정책연구본부장, 포스텍 데이터사이언스포럼 기획위원)
한국일보-포스텍 데이터사이언스포럼 공동기획
※ 뉴스 기사 데이터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서비스를 활용해 1990년 1월 ~ 2018년 12월까지의 방송보도 및 신문 기사에서 추출하였음. ‘농가 수’는 통계청의 [농림어업조사]자료를 활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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