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억의 여자’가 첫 방송부터 휘몰아치는 전개와 자극적인 이야기로 안방극장을 강타했다.
KBS2 ‘99억의 여자’는 희망 없는 삶에 미련조차 없이 살던 중 우연히 현찰 99억의 움켜쥔 여자 정서연(조여정)가 세상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드라마다.
지난 4일 첫 방송 된 ‘99억의 여자’에서는 각자 가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친구인 윤희주(오나라)의 눈을 피해 친구의 남편과 외도를 즐기고 있는 정서연(조여정)과 이재훈(이지훈)의 이야기부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가정폭력을 자행하는 홍인표(정웅인)과 불행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조여정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런가 하면 강태우(김강우)는 형사에서 퇴직한 뒤 조폭 밑에서 일을 하면서 PC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등 미래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과거 뇌물 혐의를 뒤집어쓰고 경찰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강태우는 자신과는 달리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동생(현우)을 자부심으로 여겼다.
이날 방송 말미 친구 부부인 윤희주, 이재훈, 남편 홍인표와 함께 별장 여행을 왔던 정서연은 우연희 윤희주와 말다툼을 벌였고, 이후 홍인표에게 또 다시 가정폭력을 당한 뒤 자신과 외도 중이던 이재훈과 밀회를 가졌다.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자살을 시도하려던 정서연은 근처에서 나는 차 사고 소리를 듣고 이재훈과 함께 찾은 사고현장에서 전복된 차 옆에 있는 사망한 남자 한 명과 수십 억 원에 달하는 현금다발을 발견했다.
이재훈은 곧장 경찰에 신고할 것을 제안했지만 정서연은 “이 돈, 우리가 가지자. 아무도 못 봤으니까 우리가 챙기자”라고 말했고, 이를 만류하는 이재훈에게 “어차피 지저분한 돈이니 우리가 훔쳐도 손해 보는 사람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망설이는 이재훈에게 정서연은 “재훈 씨는 빠져요. 나 혼자 할 테니까”라고 말했고, 끝내 혼자 돈을 챙기며 “더 이상 망가질 것도 없다. 그런데 이 돈이면 다 바꿀 수 있다. 빛도 없고 길고 없이 살았는데 이걸로 내 인생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건 기회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서연의 폭주에 결국 이재훈도 “이제부터 우린 공범”이라며 돈을 챙기기로 결정했다.
이재훈이 돈을 챙기기 위해 차를 가지러 간 사이, 정서연은 해당 사고 현장 한 켠에서 아직 죽지 않은 채로 바위에 기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했다. 해당 남성은 강태우의 친동생(현우)였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정서연에게 의문의 물건 하나를 건넨 남성을 보고 놀란 정서연은 “구급차를 부르겠다”고 말했지만, 이내 자신이 돈을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신고를 망설였고 그 사이 남성은 “형”이라는 외마디를 남기고 사망했다.
다음 날, 동생의 사망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강태우는 의문의 남성들에게 붙잡혀 공터로 끌려가 “100억은 어디있냐”는 추궁을 받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첫 회부터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스펙타클한 전개로 시선을 사로잡은 ‘99억의 여자’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이 얽힌 인물 간의 관계와 미스터리한 스토리로 다음 회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앞서 영화 ‘기생충’에 출연하며 제40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올해 영화제의 ‘여제’로 우뚝 선 조여정은 ‘99억의 여자’의 타이틀롤로서 첫 회를 탄탄하게 극을 이끌었다. 가정 폭력 속 삶의 희망을 잃고 친구의 남편과 외도를 저지르는 회색빛 인생을 살아오던 정서연의 인생을 밀도 있는 연기로 그려낸 조여정은 이날 극 후반 엄청난 돈을 발견하고 인생 역전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폭주하는 이의 감정까지 섬세하게 완성했다.
첫 방송에서 조여정과 파격적인 외도 연기부터 ‘99억의 여자’의 메인 스토리가 될 엄청난 액수의 돈을 함께 발견하게 된 이지훈(이재훈 역) 역시 안정적인 연기로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이지훈은 아내의 친구와 외도를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뻔뻔한 바람둥이의 모습부터 돈을 발견하고도 이를 훔치기로 결정하기까지 계속된 고민을 거듭하며 흔들리는 모습까지 다양한 심리를 섬세한 연기로 그려내며 입체적인 캐릭터의 서사를 쌓았다.
JTBC ‘SKY캐슬’에서 진진희 역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오나라 역시 이번 작품으로 완벽한 이미지 변신을 알렸다. 금수저 출신으로 인생에서 늘 성공가도만을 달려오며 겉보기에는 부족할 것 없고 자존감 넘쳐 보이는 인물이지만, 사실은 오만함으로 가득 찬 미스터리한 인물 윤희주로 분해 조여정과 날선 각을 세운 것이다. 첫 방송부터 불꽃 튀었던 두 사람의 미묘한 심리 싸움은 앞으로 그려질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런가하면 김강우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일을 그만 둔 전직 경찰로서 의미 없는 삶을 이어가던 중,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을 비밀을 파헤치게 된 강태우 역을 맡아 전작들에 비해 한결 힘을 뺀 연기로 이미지 변신에 도전했다. ‘각 잡은’ 연기가 아닌 ‘전직 경찰’로서 어딘가 한량 같고 ‘날티’ 나는 연기를 선보인 김강우의 변신은 이날 방송에서의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2화부터 펼쳐질 그의 본격적인 활약을 기대케 한 이유였다.
‘악역 맛집’으로 소문난 정웅인은 또 한 번 소름 돋는 연기로 안방극장에 소름을 유발했다.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등장했지만, 사실은 섬뜩한 피해 의식과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살잡혀있는 인물인 홍인표로 변신한 정웅인은 조여정을 향한 무차별적인 폭력과 폭언으로 충격을 자아냈다.
정웅인은 “당신은 버러지에요. 남편을 힘들게 하는 버러지. 그래서 벌을 받고 있는 거예요”라며 조여정을 욕조에 밀어 넣은 뒤 다짜고짜 샤워기로 물을 뿌린 뒤 용서를 비는 정서연(조여정)에게 “나는 항상 용서해줬어요. 당신이 집안일을 허투루 해도. 우리 아이를 하늘나라에 보냈을 때도 항상 용서해줬잖아요.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걸 알았을 때도 나는 용서해줬잖아요. 그런데 자꾸 이러면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잘못했으니까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예요”라며 피해 의식을 표출했다.
물에 젖은 조여정을 베란다에 가둔 뒤 살기를 띈 눈빛으로 “둘 중 하나에요. 아침까지 반성하고 또 반성하든가. 아니면 뛰어내리든가. 뭐 그럴만한 용기가 있는 진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한 뒤 문을 잠가 버리는 정웅인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惡) 그 자체였다.
당초 ‘99억의 여자’는 자체 최고 시청률 23.8%라는 역대급 흥행에 성공했던 전작 ‘동백꽃 필 무렵’의 명성을 이어야 한다는 부담감 속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작품의 결이 전혀 다른 작품이니 전혀 다른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던 조여정의 자신감 어린 말처럼 이날 베일을 벗은 ‘99억의 여자’는 전작의 부담감을 벗고 오롯이 자신만의 새로운 재미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다만 전작이 ‘힐링’과 ‘휴머니즘’, ‘따뜻함’ 등을 전면에 내세웠던 것과 달리 ‘99억의 여자’는 시선을 압도하는 빠른 전개와 강렬한 스토리, ‘미스터리’, ‘치정’ 등을 무기로 내세우며 다소 자극적인 전개를 선보였다. 다행히 첫 방송에서는 빠른 이야기 흐름와 인물 간의 관계 설명에 집중한 전개 덕분에 이 같은 스토리 라인이 크게 부담스럽게 다가오진 않았다. 다만 앞으로 이들이 흥행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흥미를 유발하는 자극적 전개가 아닌 시청자를 설득할 수 있는 탄탄한 스토리가 수반돼야 할 것이다.
일단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는 성공했다. 출발선에 선 ‘99억의 여자’가 어떤 미래를 그려 나갈지, 궁금증이 모인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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