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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미ㆍ중무역전쟁 비켜가기

입력
2019.12.09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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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증시가 미중 무역협상 타결 기대감에 상승한 가운데 4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트레이더가 시황판을 지켜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뉴욕증시가 미중 무역협상 타결 기대감에 상승한 가운데 4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트레이더가 시황판을 지켜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국 경제 성장은 기존 세계 질서에 중대한 정치 전략적 도전 과제를 던지고 있다. 새로운 아시아 초강대국의 등장으로 군사적 갈등을 불러올 수도 있는 지정학적 긴장이 불가피해졌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인권 침해에 대해 무수한 지탄을 받으면서도 계속 강해지는 중국 정치 체제는 서방 국가에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경제 문제도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무역국이 되었고 점점 더 고품질의 수출품을 생산해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국제 경제에서 중국의 역할이 커지는 동안 서방과의 정치적 갈등도 함께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서방이 중국과 교역을 중단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정치 경제 체계를 달리하는 국가 간 무역에는 어떤 규칙을 적용해야 할까. 나는 최근 뉴욕대학교 상하이캠퍼스 부총장 제프리 레만과 베이징대 국립개발대학원 야오 양과 협력해 이 문제에 대해 정통한 경제ㆍ법률학자로 구성된 워킹그룹을 결성했다. 워킹그룹은 얼마 전 노벨상수상 경제학자 5명을 포함한 34명의 학자와 함께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2001년 중국의 국제무역기구(WTO) 가입이나 WTO의 설립 자체는 중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 경제가 비슷한 경제 모델로 수렴하게 되며 광범위하고 대대적인 깊이 있는 경제 통합을 이루게 될 것이란 암묵적 전제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다. 불투명한 정부 개입과 산업 정책, 시장과 국유 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통제를 특징으로 하는 중국의 비 정통적 경제 체제가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빈곤을 줄이는 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체제는 서구와 심도 있는 경제 통합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게 한다.

미국에서 최근 지지를 얻고 있는 대안은 미국 경제와 중국 경제가 분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 수출에 대한 높은 무역 장벽과 양자 간 투자에 대한 엄격한 제한을 의미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전쟁을 더욱 심화 및 영구화할 것이다.

우리는 수렴과 분리 사이의 중간 지점을 제안한다. 요지는 중국과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경제 모델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경제 체제를 보장 또는 보호하기 위한 무역 정책 및 관련 정책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무역 전쟁이나 다른 압력을 통해 한 국가의 규정을 타국에 적용하거나 무역 상대에 별도 비용을 부과해 자국 이익을 챙기는 정책은 불허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이 ‘근린 궁핍화(BTN)’ 정책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막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는 국제 무역규칙에서 BTN 정책 금지를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는 중국이 과거 희토류 수출을 제한했을 때처럼 한 국가가 전 세계적으로 독점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무역 제한을 못 하게 하는 것이다. 또 디지털 기술 등 첨단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으로 외국 투자자의 자국 투자를 막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세 번째는 거시 경제 불균형(무역 흑자)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 통화를 인위적으로 저평가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이런 규칙이 정립된다면, 미국 정부가 종종 불평하는 많은 정책은 용인돼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산업 보조금, 국유 기업은 국내 문제로 간주한다. 그들이 특정 미국 기업과 투자자에게 해로울 수는 있지만, 그런 관행은 보통 본질적으로 BTN과 연관된 것은 아니다. 보조금도 전체적으로 전 세계 다른 지역에 혜택을 주게 되며, 국유 기업의 경우 경제적 비용을 주로 자국 경제가 부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자국의 기술 시스템의 통합을 보호하고, 수입품으로 인해 악영향을 받는 지역 사회를 보호하는 무역 및 투자 정책을 자유롭게 채택할 수 있다. 원한다면 국경을 제한해 중국 정책의 부정적인 여파가 자국으로 흘러 드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중국은 국가의 정책 자율성이 양면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다른 나라들도 중국만큼이나 정책 자율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접근 방식은 미ㆍ중 관계를 기반으로 하나, 창의적인 법적 조정을 통해 다자간 체제나 WTO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 워킹그룹 멤버인 로버트 스테이저가 그런 접근 방식을 제안했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은 다자간 체제에 적용하려면 세계 1, 2위 경제 사이의 사전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성명서는 그 방향으로 진전하려는 첫 발걸음이다.

모든 국제 협약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런 접근 방식의 성패는 당사자가 조건을 기꺼이 준수하려는 의지에 달려 있다. 경제학자들은 분석 대상으로서의 BTN의 개념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미국과 중국이 어느 것이 BTN 정책인지 아닌지에 대해 실제로 쉽고 빠르게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지도 않다. 용어와 정의에 대한 논란은 지속되겠지만 명확한 기대치를 제시하고, 두 국가의 경제 주권을 존중하고, 무역으로 창출될 이익을 최대한 누릴 수 있는 체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양국이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런 합의는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이 접근 방식은 미국과 다른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정치 억압이나 인권 침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다루지 않고 있다. 이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갈등 해결책과 별개로 경제 관계에서 명확한 행동 규칙이 확립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침이 없다면, 중국과 미국만 경제적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은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공공정책대학원 교수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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