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 결정 수용, 원내대표 물러나… 의총선 “최고위 월권” 비판 거세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의 발걸음은 여기서 멈춥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오는 10일을 끝으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원내대표 임기 연장을 저지한 전날 최고위원회의 결정의 정당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지만, “오직 국민 행복과 대한민국 발전, 그리고 당의 승리를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그는 밝혔다.
보수정당 첫 여성 원내대표, 다사다난 1년
지난해 12월 ‘보수정당 최초의 여성 원내사령탑’에 오른 나 원내대표의 1년은 다사다난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낙마를 이끌고,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수석대변인’에 빗댄 연설로 ‘나다르크’라는 별명을 얻는 등 강성 행보로 보수 진영에 전투력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취임 직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여야 5당 원내대표 합의문에 서명한 것을 시작으로 임기 내내 이어진 ‘패스트트랙 논란’은 그의 정치력을 시험대에 올렸다. 패스트트랙 충돌에 가담한 한국당 의원 60명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것에 대한 책임론도 일었다. 황 대표와의 불화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온 점도 오점으로 남았다. 한국당 관계자는 “최고위원들은 나 원내대표가 평소 자신들을 ‘패싱’한다는 불만이 많았다”며 “최고위원 전원이 나 원내대표 연임에 반대했다”고 전했다.
당내엔 나 원내대표의 임기 연장을 바라는 여론이 없지 않았다. 여야의 연말 패스트트랙 격돌을 앞둔 시점에 원내대표를 교체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고, 지역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한 초ㆍ재선 의원 중 일부는 인지도가 높은 나 원내대표가 총선 때까지 ‘투톱’으로서 당을 계속 이끌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나 원내대표가 최고위와 각을 세우는 대신 상황을 조기에 정리한 것은 정치적으로 옳은 결정이란 평가가 나왔다. 한 중진 의원은 “원내대표직 ‘5개월 연장’에 목매기보다 지도자로서 당 최고 의결기구의 결정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잘했다”며 “당권 주자, 대선 주자 급으로 체급이 높아진 만큼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진은 계속… “황교안, 당 사유화” 비판
나 원내대표에 대한 이번 최고위 결정은 한국당에 상당한 후폭풍을 남겼다. 4일 의원총회에서는 “최고위 결정은 월권”이란 비판이 공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김태흠 의원은 “원내대표 연임 사항은 의총에 권한이 있지 최고위원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면서 “최고위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연임 결정 권한을 의총에 넘기라”고 촉구했다. 김 의원은 비공개로 진행하겠다는 원내 지도부 방침에 반발해 “제 입을 막은들 이 얘기가 밖으로 안 나가겠나. 이게 살아있는 정당인가”라고 항의했다.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의 갈등을 비롯한 자중지란이 계속 노출되면 총선에도 악재가 될 것이라는 위기감도 팽배하다. 새누리당 시절 원내대표를 지낸 4선 정진석 의원은 이날 최고위원ㆍ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이렇게 화합을 못 하고 뭔가. (정치 하는) 20년동안 이런 것을 처음 본다”고 꼬집었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세연 의원도 MBC 라디오에 출연해 “당이 말기 증세를 보이는 것 아닌가”라고 힐난했다.
황 대표가 나 원내대표에 대한 ‘사적 감정’ 때문에 무리수를 뒀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용태 의원은 “황 대표가 단식으로 얻은 것은 당 혁신이 아니라 당 사유화였다”며 “친정체제를 구축해 당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구상”이라고 비판했다. 황 대표는 “규정에 대해서는 내가 자의적으로 검토한 것이 아니고 당 차원에서 검토해 그 원칙대로 한 것”이라며 “나는 ‘친황’ 하려고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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