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여 만에 공식 방한한 中 외교부장, 강 장관 발언에 공감 표하며 경청
한한령 조치에 변화 계기 가능성… 5일 청와대 찾아 문 대통령 예방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5년여 만에 한국을 공식 방문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마주앉았다. 2016년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로 양국이 갈등을 빚기 시작한 뒤 처음인 왕 부장의 방한은 얼어 붙었던 한중 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로 이어졌다. 한류 금지나 한국 여행상품 판매 중단 등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조치에 변화의 계기가 마련될 가능성이 있다.
9월 말 미 뉴욕 유엔 총회에서 만났던 강 장관과 왕 부장은 2개월여 만인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회담을 갖고 한중 양자 관계와 한반도 정세, 지역 및 국제 문제 등을 두루 논의했다. 왕 부장은 강 장관 초청으로 2014년 5월 이후 5년 6개월여 만에 이날 공식 방한했다. 서울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열린 건 2015년 3월 한중일 외교장관회의 계기 회담 뒤 4년 9개월 만이다.
강 장관은 모두발언을 통해 “올해가 가기 전에 서울에서 다시 만나 왕 위원님과 그간 양국 관계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성과를 평가하고 다소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개선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강 장관의 발언을 경청하던 왕 부장은 특히 ‘미진한 부분’이라는 표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왕 부장은 모두발언에서 “중국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괴롭히는 것, 힘만 믿고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 남에게 강요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물론 다른 나라 내정을 간섭하는 것도 반대한다”고 했다. 홍콩 사태 등을 놓고 자국과 갈등 중인 미국을 작심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 통역 시간을 포함해 1시간 30분가량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던 회담은 2시간 20분간 이어졌다. 왕 부장은 회담 직후 회담이 길어진 이유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우리의 관계가 좋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논의할 사안도 많았고 많은 합의도 이뤘다”고 대답했다.
이날 회담에서는 양자 현안 논의의 비중이 가장 컸다는 게 회담에 배석한 외교부 당국자의 전언이다. 특히 차관급 인문교류촉진위원회나 차관급 전략대화 등 한중 간 기존 소통 채널의 활성화에 공감하고 이들 채널을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열기로 했다고 한다. 이 당국자는 “한한령과 관련해 양국 관계를 정상궤도로 가져가 완전히 정상화해야 한다는 공감을 양측이 갖고 있다”고 했다.
이달 하순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성사될 가능성이 있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문재인 대통령 간 회담 일정도 주요 의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튿날 청와대를 찾아 문 대통령을 예방하는 왕 부장은 회담 뒤 ‘내년 초 시 주석이 방한할 것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우리는 이웃나라이고 관계를 고위층 교류를 강화할 것”이라며 “채널을 통해 (그 문제를) 계속 논의해 나가겠다”고 대답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시 주석이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는 게 한중 관계의 빠른 회복을 위해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그런 환경이 조성돼 가는 상황에서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전략적 카드가 충분히 준비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연말을 앞두고 북미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서는 양측이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할 수 없고,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공동의 인식을 바탕으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진지하고 착실하게 진전을 이뤄나갈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했다”고 당국자는 설명했다. 이날 중국 외교부는 왕 부장이 “조선(북한) 측의 안보 및 발전과 관련한 합리적 관심사는 중시되고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현재 북한은 미국에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적대 정책’을 철회하라고 미국에 요구 중이다.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시도와 관련한 중국 측 메시지가 있었을 수도 있다. 이날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은 사드 배치로 이미 많은 고통을 받았다. 실제 미사일 배치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 동의한다면 한중 관계는 파탄 날 것”이라는 경고가 담긴 청샤오허(成曉河) 인민대 교수의 기고를 실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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