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트럼프 작심 발언 아냐… 北 반발하기엔 명분 약해”
北 인민군 총참모장 “수뇌 간 친분이 물리적 격돌 저지” 담화
美에 ‘새 계산법’ 최후통첩… 응답 없을 땐 ‘새로운 길’ 수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북 ‘무력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이튿날인 4일 북한은 “이 소식을 불쾌하게 접했다” 수준으로 반응하며 별 다른 행동을 시사하지 않았다. 북미가 서로 ‘말 폭탄’을 주고 받았던 2017년처럼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거칠게 반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분석이다. 판을 깨는 대신 미국과 냉랭한 관계를 이어가며 긴장을 유지하는 길을 택할 거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3일(현지시간) 영국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기자회견의 발언 수위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전문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좋은 관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말을 들었다면 제3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을 것” 같은 말로 외교적 치적을 과시한 뒤 불현듯 “(북한에)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면 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다시 “관계는 정말 좋다”거나 “합의를 이행하길 바란다”며 이야기를 끝맺는다. 북미 정상 간 ‘케미(궁합)’를 동력으로 비핵화 대화 기조는 유지하되,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재개로 ‘레드라인’(금지선)을 넘는다면 군사적 옵션을 고려할 수 있다는 조건부 경고 수준이다. 외교적 해결을 우선하는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를 재확인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과대 해석을 경계한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대진대 교수)은 “‘비핵화 전까지 제재를 완화할 수 없다’ 등 연말까지 먼저 양보할 계획이 없음을 못 박는 발언이 나왔다면 모를까,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만 갖고 반발하기에는 북한 입장에서 명분이 약하다”고 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도 “트럼프 대통령의 무력 사용 발언이 계획되거나 의도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설령 북한이 반발을 해도 저(低)강도일 공산이 크다. 실제 북한은 이날 박정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명의의 담화를 내고 “조미 사이의 물리적 격돌을 저지시키는 유일한 담보는 조미(북미) 수뇌들간 친분관계”라며 “(우리를 상대로) 무력을 사용하는 일은 매우 끔찍한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북한은 전날 이태성 외무성 미국 담당 부상 명의의 담화를 통해 ‘크리스마스 전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라’고 미국에 사실상 마지막 경고를 한 상황이다. 대북 소식통은 “최후통첩까지 한 마당에 굳이 거칠게 반응해 대화의 여지를 스스로 닫아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다고 보고 답을 기다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내부적으로 북한은 ‘플랜B’를 마련하는 수순에도 돌입한 듯하다. 미국이 끝내 답을 내놓지 않을 상황에 대비해서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이달 하순에 소집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크리스마스 때까지 제재 완화 등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지 않으면 ‘새로운 길’의 구체적인 방향을 정하겠다는 예고 성격이다. 다른 소식통은 “전원회의 시기를 특정하지 않은 건 미국 반응을 기다리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새 노선에는 △중국ㆍ러시아와의 협력 강화(외교) △단거리 미사일 등 재래식 군사력 강화(군사) △제재에 맞선 자력갱생(경제) 등의 방향이 담기리라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연말 시한’을 앞두고 김 위원장이 군 간부들과 함께 군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른 것 역시 ‘비핵화 협상이 결렬되면 내년부터는 강경 군사 행보에 나서겠다’는 경고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탄핵 국면이라는 미 정치 상황상 크리스마스 전에 미국이 북한에 ‘통 크게’ 양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북한은 당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길’을 수립하고 내년 신년사 때 공표한 뒤 상반기 중 인공위성 발사 등 실행 수순을 밟을 듯한데, 미국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내년 11월 미 대선 전까지 협상 국면이 유지되느냐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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