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측을) 만났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동 한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 말이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통신 3사 최고경영자 간 조찬 회동을 마치고 난 뒤였다. SK텔레콤은 9월 지상파 방송 3사와 힘을 합쳐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웨이브를 출범시켰다. 디즈니는 2021년 글로벌 OTT 디즈니플러스를 한국에 선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박 사장의 언급은 OTT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적과도 손을 잡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OTT 싸움이 치열해지면서 콘텐츠 확보 경쟁도 불붙고 있다. 포문을 먼저 연 곳은 넷플릭스다.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그룹 CJ ENM, 종합편성(종편) 채널 JTBC와 잇달아 장기 계약을 체결하며 드라마 등 우수 콘텐츠 확보에 나섰다. 지난달 미국에서 첫 선을 보인 강력한 라이벌 디즈니플러스에 맞서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국내에선 KT가 지난달 28일 OTT 시즌을 발표했고, CJ ENM과 JTBC는 내년 상반기 합작 OTT를 별도 출범시킬 예정이다. 한국에서 거세질 OTT 경쟁을 감안해서도 합종연횡을 통한 콘텐츠 확보는 불가피하다.
CJ ENM의 드라마 전문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은 내년부터 3년 간 오리지널 드라마를 포함해 21편 이상을 넷플릭스에 공급한다. 1년에 7편꼴로 제공되는 셈이다. 올해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한 드라마가 30편인 것을 감안하면, 약 23%에 해당한다. 넷플릭스에만 독점 공개하는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도 1년에 2편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튜디오드래곤 관계자는 “(제작 물량을 늘려) 장기적으로는 한해 40편 제작이 목표”라고 밝혔다. JTBC는 CJ ENM처럼 내년 상반기부터 3년 간 저녁 시간대에 방영하는 드라마 20여편을 넷플릭스에 공급하기로 지난달 계약했다.
넷플릭스가 CJ ENM과 JTBC와 손잡고 드라마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지상파 등 기성 방송들은 난처한 상황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은 tvN과 OCN 등 CJ ENM 보유 케이블채널에 드라마를 공급하면서도 지상파 방송, 종편과 협업해 왔다. 국내 최대 드라마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이 넷플릭스에 대한 공급량을 늘릴수록 지상파 등은 드라마 수급란을 겪을 가능성이 커진다. JTBC와 CJ ENM이 기존 OTT 티빙을 기반으로 합작 오리지널 콘텐츠도 제작할 계획이어서 기성 방송사와 OTT간 콘텐츠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지상파 3사와 종편 4사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편수 100편 안팎이다.
콘텐츠 몸값은 오름세다. 대형 제작비가 투입되는 드라마의 OTT 쏠림 현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유명 작가 섭외에서도 지상파 등이 더욱 불리해질 수 밖에 없다. 몇 년 전부터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 PD 사이에선 “좋은 대본은 tvN에게 먼저 제출되며 JTBC가 그 다음, 우리가 꼴찌”라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KBS2 ‘동백꽃 필 무렵’을 연출한 차영훈 PD는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에서 “드라마는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니 결국 (문제는) 돈”이라며 “강소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지상파 방송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는 방법 아닐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SK텔레콤과 지상파 방송 3사가 합작한 OTT 웨이브도 고민이 깊다. 출시 3개월만에 유로가입자 150만명을 확보했으나, SK텔레콤의 OTT 옥수수에서 제공했던 CJ ENM 콘텐츠를 볼 수 없다는 점이 많은 시청자의 불만이다. 웨이브는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로 타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25일 종방한 KBS2 ‘조선로코-녹두전’이 선두주자였다. 웨이브에서 OTT 오리지널로 확보하는 대신, 100억원 상당의 제작비를 투자했다. 평균 시청률 6%대로 성적은 좋지 않았다. 한 지상파 방송 관계자는 “내년에 공개될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 3편이 분수령이 될 듯하다”며 “디즈니플러스와 SK텔레콤이 손잡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을 듯하다”고 말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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