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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오! 베트남] 스승의 날에 꽃 한송이 못 받던 음악교사... 변화의 소리가 들린다

입력
2019.12.05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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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연주회라고는 구경할 수 없는 베트남 북부 한 산간마을의 아이들이 마을 회관에 옹기종기 모여 뮤지컬 연습을 하고 있다. 보육원과 산간 벽지를 돌며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 피아니스트 짱 찐씨는 “이곳 아이들을 포함해 모든 아이들이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음악교과서를 만들었다”며 “음악 교육을 통해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찐씨 제공
음악 연주회라고는 구경할 수 없는 베트남 북부 한 산간마을의 아이들이 마을 회관에 옹기종기 모여 뮤지컬 연습을 하고 있다. 보육원과 산간 벽지를 돌며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 피아니스트 짱 찐씨는 “이곳 아이들을 포함해 모든 아이들이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음악교과서를 만들었다”며 “음악 교육을 통해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찐씨 제공

베트남 보육원들과 산간벽지를 돌며 음악을 가르치는 짱 찐(33)씨는 3년 전 북부 산골 마을에서 겪은 일을 떠올리면 마음이 바빠진다. 당시 아이들을 모아 작은 뮤지컬 하나를 연습하는데, 아홉 살 남자 아이 하나가 ‘스톤’(Stoneㆍ바위) 역을 고집했다. 남들 앞에 서는 게 부끄러워서라고 생각했지만, 이유는 달랐다. “강하잖아요. 아빠한테 맞는 엄마를 보호할 거예요.” 생전 처음 ‘공연’을 보면서 아빠는 술을 줄이고 아들을 이해하게 됐지만, 미안해서인지 내린 비 때문인지 공연장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스톤’은 서운할 법도 했지만 씩씩했다. “괜찮아요. 이제 무지개가 뜰 거잖아요.” 찐씨는 “음악의 힘이 바로 이런 것이지만, 도시에서 떨어진 산골 아이들은 음악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35분짜리 수업, 고작 일주일에 한 번 

산에서 내려와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하노이나 호찌민 등 대도시 학생들마저 음악 수업을 거의 받지 못하고 학창 시절을 보낸다. 악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물론,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을 베트남에서 만나보기 힘든 이유다.

베트남 교육훈련부에 따르면 의무교육 12년(초등 5년, 중등 4년, 고등 3년) 중 음악 수업이 있는 학년은 초등 4년부터 중등까지 6년에 그친다. 찐씨는 “이마저 일주일에 한 번, 35분짜리 수업이 전부”라며 “음악 교과서에 악보가 등장한 것도 최근 일”이라고 소개했다.

이전까지는 이론 수업과 선생님을 따라 노래를 부르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호찌민 국립음악대 피아노학과 응우옌 바오(24)씨는 “제대로 된 음악 교사는 물론 음악실을 갖춘 공립학교는 없다”며 “음악을 배우기 위해서는 학교를 마친 뒤 또 특수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정규 학교 수업을 마친 투언(8)이 엄마가 운전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호찌민 국립음악대를 찾았다. 진짜 음악 수업을 듣기 위해 온 것이다. 베트남에서 음악을 배우기 위해서는 음악 학교를 별도로 다녀야 한다. 공교육 상의 음악 교육은 부실 문제를 떠나 거의 없다시피 하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정규 학교 수업을 마친 투언(8)이 엄마가 운전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호찌민 국립음악대를 찾았다. 진짜 음악 수업을 듣기 위해 온 것이다. 베트남에서 음악을 배우기 위해서는 음악 학교를 별도로 다녀야 한다. 공교육 상의 음악 교육은 부실 문제를 떠나 거의 없다시피 하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실제 호찌민 음대 학생 모두 초등 4, 5학년 때 이곳 부설 음악학교에 시험을 쳐 입학한다. 이후 주 2~5시간씩 별도의 음악 교육을 8~9년 동안 이수하면 이 대학 입학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0.1%에도 못 미치는 극소수의 학생들이 동시에 2개의 학교를 다니며 음악을 배운다. 이들에게 음악교육은 교양이나 취미로서의 학문이 아니라 특수한 목적의 예술 또는 기술에 가깝다.

일선 학교 현실을 보면 베트남에서 음악 교육은 황무지나 다름없다. 호찌민 음대 강사 란(33)씨는 “스승의 날에 가장 꽃다발을 적게 받는 교사가 바로 음악교사”라며 “제자들은 물론 학부모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걸쳐 음악 교사 경시 풍조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 스승의 날에 꽃 못 받는 음악교사 

지난해 기준 베트남에는 1만937개의 중등학교에서 537만3,312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이들을 책임지는 교사는 모두 30만5,248명으로,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18명 수준이다. 그러나 음악 교사는 1만1,424명에 그쳐 한 학교에 1명 꼴로 이들 교사 1명이 보통 맡는 학생은 무려 470명에 이른다.

찐씨는 “음악교육학과를 갖춘 사범대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것도 이유지만, 낮은 처우와 강도 높은 업무 탓에 음악 교사의 길로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짱 찐씨가 초등학생용 음악 교과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올해까지만 해도 각급 학교는 국정교과서만 이용할 수 있었지만, 내년부터는 다양한 교과서 중 골라 교재로 쓸 수 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짱 찐씨가 초등학생용 음악 교과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올해까지만 해도 각급 학교는 국정교과서만 이용할 수 있었지만, 내년부터는 다양한 교과서 중 골라 교재로 쓸 수 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실제 하노이, 후에, 호찌민 등 3곳에만 있는 국립음대 대학생들은 대부분 전문 연주자나 교수 자리를 내다보는 이들이다. 공교육 현장의 교사를 희망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호찌민 음대 학생 바오씨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레슨을 통해 월 1,500달러 이상을 번다. 이따금 연주회를 갖거나 학원을 열면 수입은 훨씬 늘어난다”며 “굳이 교사로 취업하려는 친구는 주변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 교수들도 교수직함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과외 활동으로 수입을 올린다. 바오씨의 월수입 1,500달러는 외국계 은행원들에 비교해도 2~3배 많은 액수다.

이 대학에서 대학원생들을 가르치는 주은영 교수는 “제자 중 실업자가 없다”며 “척박한 땅이지만, 그래도 사교육을 통해서라도 음악과 악기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 음악 교사 양성이 우선 

베트남에서 음악교사가 이렇게 대우를 받지 못한 데에는 성장일변도의 정부정책과 이에 맞춘 교육정책 영향이 크다. 경제 성장에 필수적인 이공계 인력 양성을 위한 수학 교육과 영어 등 외국어 교육이 중심을 이루고, 미술, 음악 같은 예체능 교육은 뒷전이다. 고등학교에는 아예 음악 수업이 없다.

호찌민 국립음대 강의실 복도에서 한 학생이 혼자 악기 연습을 하고 있다. 음대 학생들은 대부분 레슨 아르바이트를 뛴다. 절대적으로 인기 있는 악기는 피아노. 월 8회, 회당 2시간씩 레슨을 해주고 약 15만원을 받는다. 학업과 병행하며 학생 신분이지만 일반 근로자들보다 2,3배 많은 수익을 올린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호찌민 국립음대 강의실 복도에서 한 학생이 혼자 악기 연습을 하고 있다. 음대 학생들은 대부분 레슨 아르바이트를 뛴다. 절대적으로 인기 있는 악기는 피아노. 월 8회, 회당 2시간씩 레슨을 해주고 약 15만원을 받는다. 학업과 병행하며 학생 신분이지만 일반 근로자들보다 2,3배 많은 수익을 올린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하지만 이 같은 현실에도 변화의 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다. 고등학교에 음악 교육을 포함시키는 정부안이 관련 절차를 밟고 있고, 교육부는 내년부터 국정교과서 독점을 풀어 다양한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이 음악과 가까워지게 할 계획이다.

음악의 저변 확대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교사 양성에 있다.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고등학교에도 음악 교육을 실시한다는 방침이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교사 공급 수준을 감안하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열린 음악교육 관련 세미나에 참석한 호찌민 9군의 고등학교 교감 쩐 민 투이씨는 “교육훈련부에는 고등학교 음악 교육을 위한 규정이 전무하다. 방과후 수업으로라도 음악을 가르치려 해도 문제는 교사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에는 지난해 기준 사범대 내 음악교육학과를 갖춘 대학이 10여곳 정도 있지만 인기가 낮다.

짱 찐씨가 지난해 말 하노이 시내 골목에서 개최한 골목 음악회. 수도 하노이에 살아도 실제 음악 공연을 보기는 쉽지 않다. 찐시 제공
짱 찐씨가 지난해 말 하노이 시내 골목에서 개최한 골목 음악회. 수도 하노이에 살아도 실제 음악 공연을 보기는 쉽지 않다. 찐시 제공

하노이ㆍ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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