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제가 납치됐어요.”
페르난도 로페즈는 최근 납치됐다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 이어 수화기 저편의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몸값으로 1만2,500달러(약 1,491만원)를 요구했다. 다급하게 집을 나선 순간 그가 마주친 사람은 다름 아닌 딸이었다. 하마터면 거액을 고스란히 날릴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팸전화가 걸려오는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브라질이다. 3일(현지시간) 스팸전화 차단 애플리케이션 트루컬러에 따르면 올해 브라질 국민 한 명이 받는 스팸전화는 월평균 45.6통. 2위 페루(30,9통)보다 무려 30% 높은 수치이다. 가히 스팸 지옥이라 할 만하다. 피해는 계속 늘고 있다. 2년 전 기록인 평균 21통에서 두 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류도 가리지 않는다. 단순한 광고마케팅 전화는 예사다. 요즘에는 가족 납치를 빌미로 몸값을 요구하거나 전화 벨을 한번만 울리도록 해 상대방의 국제전화 발신을 유도하는 이른바 ‘원링(One ring) 스팸’이 성행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보이스피싱 수법은 2년 전만해도 전체 스팸 전화 가운데 1%에 불과했으나, 올 들어 26%까지 치솟았다.
브라질이 스팸천국으로 급부상한 것은 사생활을 옥죄는 개인정보 정책 탓이 크다. 현지 통신규제 당국에서 근무하는 엘리자 레오넬은 “우리 국민들은 끊임없이 개인정보를 등록해야만 하는 환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라질에선 치약 같은 생활필수품을 살 때조차 정부의 세금부과 목적에 따라 납세자번호 등을 알려야 한다. 상점 점원들도 손쉽게 손님의 개인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이렇게 노출된 각종 개인정보가 여러 분야 업자들 손에 들어가고 이 중 도둑 맞은 전화번호가 불순한 목적으로 악용되는 것이다.
텔레마케터 등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수집과 전화 폭탄 공세를 막을 수 있는 법안이 전무한 점도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공휴일 콜센터 운영을 법으로 금지해 스팸전화를 4분의1로 줄인 이탈리아나 관련 규제 법안을 전격 입법한 미국의 전례를 참고할 만하지만 브라질 당국은 여전히 미온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차승윤 인턴기자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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