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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 부모 기자회견에서 법안 통과를 염원하는 피해 어린이 부모들이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고 있다.

“정치에 대해서 몰라서 이런 대접을 받는 건 아닌지. 이렇게 양쪽에서 이용만 당하다 버려지는 건 아닌지…”(민식이 엄마 박초희씨)

지난달 29일 국회 정론관. 이른바 민식이법 등 ‘어린이 교통안전법안’의 본회의 통과만을 기대하며 버티던 어린이 피해자 부모들은 이 법안들을 정치 협상 카드로 제시하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얘기를 듣고 국회 정론관으로 달려와 차례로 발언에 나섰다. 민식이 엄마 박초희씨는 손과 몸까지 벌벌 떨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일들, 국회의원님들 당신들께서 하시라고 쥐여준 자리입니다. 우리 아이들 협상카드로 절대 쓰지 마세요.” 휘청거리는 박씨 몸을 옆에선 하준이 엄마 고유미씨가 부축하듯 받쳤다.

이날 미디어를 통해 이 기자회견을 본 많은 국민이 함께 숨죽여 울었다. 그러곤 국민을 울리고, 무릎 꿇리는 정치를 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해인이 아빠 이은철씨는 아랫입술을 떨며 소리 없이 울먹였다. 그는 “선거 때만 되면 표 받기 위해 국민 앞에 굽실거리고 지금은 국민이 무릎 꿇어야 하고, 도저히 이 상황이 이해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태호 엄마 이소현씨도 “정치요? 정치인들이 해야 할 게 아닌 거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국회 와서 국회의원님들도 만나고 (국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정치는 국민이 해야 할 거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의원총회에서 나왔다는 “민식인지 삼식인지”라는 발언은 오늘도 우리 가슴을 깊게 후벼 파고 있다.

한숨 쉬어 지는 정치 현장의 장면은 며칠 사이 국회 다른 곳에서도 벌어졌다. 지난달 2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손을 잡고 호소하려는 한 시민의 손을 짜증 섞인 표정으로 뿌리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 시민은 “하지 마세요. 왜 이러세요”라고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지나가는 권 의원의 등 뒤로도 연신 허리를 숙이며 “부탁 드린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 시민은 16ㆍ18ㆍ19대 국회까지 세 차례 발의됐으나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된 ‘여순사건 관련 특별법’ 처리를 법사위 국회의원들에게 호소하던 중이었다. 이 장면을 접한 한 누리꾼은 “국민의 손을 저렇게까지 뿌리치시다니. 혹시라도 다음 선거에 나왔을 때 국민의 손을 잡을 자격이 있을지 상당히 의문”이라고 댓글을 남겼다.

최근 여야 모두에서 ‘좀비’라는 표현이 나왔다. 국민과 괴리돼 정치 싸움에 몰입하는 국회가 스스로 반성할 것을 촉구하는 표현이었다.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계속 (국회의원을) 하면 저도 좀비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역시 불출마를 선언한 김세연 한국당 의원도 “감수성이 없고 공감능력이 없으니 소통능력도 없다. 사람들이 우리를 조롱하는 걸 모르거나 의아하게 생각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다수의 국회의원들은 오히려 이들의 비판을 자해행위라고 비난했다.

네이버 검색창에 '국회의원'을 검색하자 연관검색어로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뜬다. 이미 국민은 내년 총선에서 좀비들을 걸러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네이버 검색창 캡쳐 [저작권 한국일보]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무릎을 꿇는다. 그 동안 ‘오만했다’며 반성하고, 사죄하며 눈물까지 흘린다. 유권자들을 향해 최대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싸늘한 사람들에게도 친절한 표정으로 다가가 손을 내민다. 그러곤 금배지를 달면 허리가 꼿꼿해진다. 국민이 정치에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지지 않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 감수성 없고, 공감능력 없는 ‘좀비’들을 걸러내야 한다. 21대 국회에서는 누가 무릎 꿇는지 지켜보겠다.

강희경 영상콘텐츠팀장 kst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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