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아르헨에 기습적 관세 부과
프랑스 디지털세에 보복관세 착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사전 예고 없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철강ㆍ알루미늄에 즉각적인 관세 부과를 밝히고, 프랑스에 대해서는 보복 관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중국과의 무역 협상 진전으로 미국의 관세 압박이 완화되리란 시장의 기대를 뒤집고 ‘전 방위적인 관세 칼춤’이라는 불확실성을 확대한 것이다. 특히 이날 기습적으로 이뤄진 관세 부과는 내년 미국 대선 표심을 의식한 국내 정치적 요인에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즉흥성까지 결부된 결과로 분석돼 ‘관세 칼날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이미 무역협정을 통해 ‘칼날’을 피한 국가, 심지어 동맹이라도 부지불식간에 트럼프 관세 공격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닥쳤다고 내다봤다. 한국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를 피했다고 여겨졌지만, 경우에 따라 자동차 고율관세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자국 통화에 대한 막대한 평가절하를 주도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농부들에게 좋지 않다”며 “그러므로 즉시 효력 있게 나는 이들 나라에서 미국으로 운송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트윗에서 “2018년 3월 1일 관세가 발표된 이후 미국 시장은 21%나 증가했다. 미국은 막대한 금액의 돈을 챙기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중국의 표적이 된 우리 농민들에게 주고 있다”며 대중 관세 정책의 효과를 거듭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체들이 준비할 예고 기간도 없이 느닷없이 발표된 관세 부과를 두고 근거가 불투명한 자의적 조치이며 참모들과의 상의도 거치지 않은 즉흥적 결정이란 지적이 쏟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 이유로 환율 조작을 들었으나 두 나라는 미국 재무부의 환율조작국이나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돼 있지 않다. 양국은 오히려 최근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달러 보유고를 내다파는 조치를 취해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더구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5월 쿼터제를 조건으로 철강, 알루미늄 관세 부과를 이미 면제 받았으나 이 같은 합의도 무용지물이 됐다.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며 트럼프 대통령을 추종해온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으로선 그야말로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기존 합의나 정치적 동맹도 무역전쟁을 피하는 보호막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허를 찔린 건 두 나라뿐만이 아니다. 백악관이나 정부 부처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후에도 공식적인 관세부과 조치를 내놓지 않았고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은 상무부에, 상무부는 백악관에, 관세국경보호청은 무역대표부에 문의하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미국 언론들은 근거와 절차를 벗어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이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셈법에 따른 것으로 본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돼지고기와 대두 등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을 줄인 중국의 대체 공급지로 떠올라 미중 무역전쟁의 반사이익을 누린 곳이다. 미국 농업과 경쟁 관계에 있는 이들 나라에 대해 보복 조치로 중국에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더욱 압박하는 동시에 미국 내 지지층 결집의 불쏘시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관세 부과 관련 질문에“우리 철강 회사들이 매우 기뻐하고 농민도 매우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이날 프랑스의 디지털세가 자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란 결론을 내리고 보복 관세 부과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힌 것도 내년에 미국 기업 보호를 내세운 트럼프발(發) 무역 전쟁이 더욱 격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USTR은 프랑스의 디지털세가 미국 디지털기업을 차별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24억 달러상당의 프랑스산 수입품 63종에 대해 최고 100%의 추가 관세를 물리는 방안 등 후속 조처에 대한 의견 수렴 절차에 들어갔다.
미국이 보복관세 절차에 착수하자 프랑스는 유럽연합(EU) 차원의 강력 대응을 경고했다. 3일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미국이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면 유럽의 강력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 어제 EU와 접촉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의 보복관세 위협 등은) 미국이 주요 동맹인 프랑스와 유럽 전체에게 할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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