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K리그1(1부리그)은 ‘기적의 38라운드’를 끝으로 화려한 마침표를 찍었다. 최종 라운드, 마지막 순간까지 우승팀을 가늠하기 힘들었던 짜릿한 드라마였다. 누가 우승할지 몰라 모조 우승트로피까지 급조해 치른 일요일의 마지막 경기. 결국 울산은 불운에 눈물을 떨궈야 했고, 전북은 막판 뒤집기 우승으로 환호했다. K리그 역사상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반전의 피날레였다.
올 시즌의 끝을 감동으로 적신 또 다른 경기는 토요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인천과 경남의 맞대결이다. 1부리그 잔류 확정이냐 승강 플레이오프로 내몰리느냐를 건 피 말리는 승부였다. 생존을 건 경기라 더욱 간절했다. 극도의 긴장감 속 선수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묵직했다. 선수들은 절박함으로 내달렸지만 양측 모두 공격이 좀체 풀리지 않았다. 공이 잠시 멈출 때면 카메라는 유상철 인천 감독을 자주 비췄다. 감독의 눈빛은 간절했고, 그를 지켜보는 팬들의 가슴은 먹먹했다.
결국 경기는 0-0으로 끝났고, 인천이 1부 잔류를 확정했다. 우승도 아니고 허구한 날 하위권에서 허우적대다 잔류에 목을 매는 홈팀에 정떨어질 만도 한대, 16대의 버스를 대절해가며 창원까지 내려온 1,000여 명의 인천 팬들은 서로 얼싸안고 ‘잔류왕’의 잔류 성공을 축하했다. 유 감독과 선수들이 팬들 앞에 서서 감사 인사를 전할 때였다. 관중석에선 ‘남은 약속 하나도 꼭 지켜줘’라는 하얀 현수막이 펼쳐졌다.
췌장암과의 힘든 싸움을 앞둔 유 감독의 쾌유를 바라는 마음들이 한 땀 한 땀 새긴 응원이었다. 유 감독이 스스로 병을 밝힌 건 지난달 중순. 그는 경기장에 서서 반드시 인천의 잔류를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곧 인천에서 열린 상주전에서 차가운 겨울비를 맞아가며 홈 승리를 이끌어 눈물의 감동을 선물했다. 인천의 마지막 상주전과 경남전은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유 감독에 대한 연민의 시선 때문만은 아니다. 상주 감독은 “상대를 ‘리스펙트’ 하기 위해서”라도 이기려 최선을 다했고, 비겨도 탈락인 경남은 더욱 처절한 심정으로 인천을 상대했다. 골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를 떠나 스포츠가 이토록 짜릿하고 격정적일 수 있다니 새삼 놀랐다.
최종 라운드 말고도 K리그는 올 시즌 전체 역대급 흥행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1, 2부 합쳐 누적관중 236만명을 넘겼다. K리그1의 평균관중은 8,013명으로 작년 대비 50% 가까이 증가했고, K리그2 또한 70% 이상 폭증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누가 K리그를 보냐”며 놀림 받던 한국프로축구로선 대반전이다. 물론 독일월드컵에서의 분투,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20세 이하(U-20) 월드컵 준우승 등의 곁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달라진 감독과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추락하던 K리그를 반등시켰다. 한 골 먹으면 두 골 넣겠다는 공격축구로, 한 발 더 뛰는 헌신적인 플레이로 재미를 불어넣었다. 관중 한 명의 마음이라도 잡겠다고 발벗고 나선 구단 관계자들의 노력이 더해졌다. 간절히 살려낸 그라운드에 절절하고 눅진한 감동까지 전해지며 팬들은 마음을 활짝 열었다.
프로축구연맹은 이제 붐업의 바람을 타고 중계권료의 현실화까지 기대하고 있다. 연맹과 대한축구협회가 최근 내건 중계권료 입찰 최소 금액은 연 250억원이다. 지난 10년간 연 60억원에 묶여있던 것에 비하면 크게 오른 금액이다. 하지만 일본 J리그 중계권료가 연 2,200억원에 달하고 호주 A리그가 500억원인 것에 비하면 과하지 않다는 게 연맹의 주장이다. 중계권료가 오른 만큼 투자가 이뤄지면 K리그는 더 재미있어질 거란 희망도 품고 있다.
멋지게 부활한 K리그에 더 크고 더 많은 기적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유 감독이 ‘남은 약속 하나’도 꼭 지켜내기를.
이성원 스포츠부장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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