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최고경영자 팀 쿡(왼쪽)이 지난달 20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애플 생산공장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제품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이 19일 한 대담에 출연해 애플의 비전과 자신의 인생관을 진솔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동안 스티브 잡스의 그늘에 있던 그를 제대로 보여준 기회였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말한 대목이었습니다. 30대 후반에 그는 삶의 목적이 좋은 직장, 높은 연봉 같은 것이 아니라 타인을 돕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으며, 그 이후 삶은 너무 쉽고 평화로워졌다고 했습니다. 이 나이 먹도록 여전히 욕망에 근심하는 저는 부끄럽고도 부러웠습니다. 그가 소개한 애플의 비전 역시 담대하고 매력적이었습니다. 애플은 이미 재생에너지만 사용하며, 앞으로는 전 제품을 재활용품으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애플은 지구에 아무런 나쁜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호들갑을 떨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애플 진짜 멋있다. 우리 앞으로도 계속 아이폰만 쓰자. 아내는 저를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습니다. 근데 애플, 세금은 잘 낸대?

‘더블 아이리시 위드 어 더치 샌드위치’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얼핏 듣기엔 음식 이름이지만, 이는 국제적 세법 허점을 교묘히 이용한 절세 구조입니다. 1980년대 애플이 만들어 냈고, 구글을 비롯한 전 세계 거대 기업들이 모두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의 결제가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에서 이루어지는 이유입니다. 국민대 이태희 교수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구글이 이런 방식으로 우리나라에서 ‘아낀’ 세금은 연간 약 2,000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애플의 경우에도 엄청날 것입니다.

애플은 이렇게 얄미운 방법으로 세금을 아끼면서 동시에 재생에너지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가진 셈입니다. 애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업은 모순적입니다. 주식회사라는 혁신의 첫 결과물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인도네시아 식민 착취의 주역이었습니다. 카네기나 록펠러 같은 초기 거대 자본가들은 새로운 생산방식을 창안한 혁신가이며, 노동 탄압과 불공정 경쟁을 자행한 배금주의자이며, 또한 역사적 자선가입니다. 우리나라 재벌들 역시 혁신과, 경제성장과, 동시에 정경유착의 주역입니다. 그래서 기업을 착하다 혹은 나쁘다라고 간단히 호명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기업의 모순성은 그것이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을 가진 기업가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된다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혁신적인 기업가들은 매력적인 기회를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포착하며, 기회를 추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내려는 열망에 휩싸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열망 덕에 우리는 혁신을 누립니다. 만약 이들에게 이미 존재하는, 그리고 ‘착하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방법만 선택하라고 강요한다면 혁신은 사라집니다. 기묘한 딜레마입니다. 전에 없던 방식으로 행동하는 기업들에 관용을 베풀어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의미이니까요. 그런데 이 관용은 쉽지 않습니다. 기업이 채택한 새로운 방식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시간이 좀 지나봐야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판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과거의 방식을 파괴하면서 좀 이상한 짓을 하는 기업들을 어느 정도 참아줄지 합의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것이야말로 정치가 감당해야 할 역할입니다. 정치에 따라 모든 기업은 좋은 기업이 되어 갈 수도 있는 셈입니다. 한동안 토론 자리에도 가고, 글을 쓰기도 하면서 정치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깨닫습니다. 우리 정치는 이런 역할을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대신 기업들을 “좋은” 혹은 “나쁜”이라고 손쉽게 재단하는 일에 더 흥미를 느끼는 듯합니다. 나쁜 기업이라고 불리지 않으려면 야성적 충동을 억눌러야 하는 시대가 올까 미리 두렵습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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