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12월 추천 음악 여행지
노래는 추억이자 그리움이다. 트로트에서 발라드, 록까지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를 떠올리고 그 노래를 흥얼거리게 만드는 곳이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대중가요와 연관 있는 전국 6곳을 12월 추천 여행지로 선정했다.
◇ ‘마왕’을 만나는 곳, 성남 신해철거리
분당의 ‘신해철거리’는 성남시와 팬들이 마음을 모아 그의 작업실 주변에 만든 길이다. 마이크를 잡고 앉은 신해철 동상을 중심으로 160m 정도 이어진다.
2014년 10월 허망하게 세상을 뜬 ‘마왕’을 추모하는 글이 바닥에 새겨져 있다. 인순이는 ‘그리운 이여’라고 적었고, 유재석은 ‘날아라 병아리’를 들으며 위로받던 때가 있었다고 회고한다.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민물장어의 꿈’에서 따온 노랫말도 나무 푯말에 새겨져 있다. 구절마다 울림이 묵직하다.
‘신해철스튜디오’에는 그의 자취가 생생하다. 입구에는 장르를 망라한 서적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서재 옆은 음악 감상실이다. 넥스트 콘서트 때 입은 의상이 걸려 있고, 1997년 EMI에서 발매한 라이브 앨범을 감상할 수 있다. 일정표에 적힌 신해철의 마지막 스케줄은 2014년 10월 30일 오후 4시 JTBC ‘속사정 쌀롱’ 녹화였다. 그는 끝내 이 일정을 소화하지 못했다. 팬들이 게시판에 남긴 글귀에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춘천 가는 기차’ 타고 ‘소양강 처녀’를 만나다
무궁화호가 ITX-청춘열차로 대치됐지만, 경춘선은 여전히 낭만적이다. 김현철이 부른 ‘춘천 가는 기차’는 수많은 연인을 춘천으로 이끌었고, ‘소양강 처녀’는 호반의 도시를 알렸다. 1989년 나온‘춘천 가는 기차’는 옛 연인을 그리워하며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가는 여정을 그렸다. 5월의 아름다운 사랑이 눈 내리는 겨울의 추억으로 변한다.
춘천역은 여행의 또 다른 시작점이다. 춘천뿐만 아니라 화천과 양구의 시티투어버스가 이곳에서 출발한다. 역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소양강 처녀’를 만난다. 7m 높이의 소양강처녀상이 수상 산책로 위에 서 있다. 인근의 ‘소양강 스카이워크’는 춘천 호반의 랜드마크다. 수면 위의 강화유리 아래로 강물이 흐르는 모습이 제법 스릴 있다. 입장료 2,000원은 ‘춘천사랑상품권’으로 돌려준다.
◇노래가 만든 전설, 제천 박달재
제천 봉양읍과 백운면 사이 고갯마루엔 변함없이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가 흐른다. 1948년 발표된 이 노래에 담긴 금봉과 박달의 사랑 이야기가 박달재 곳곳에 조각으로 표현돼 있다.
조선 중엽 경상도의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다 이 고개 아랫마을에 하룻밤 머물다 금봉과 첫눈에 반한다. 며칠간 사랑을 나눈 박달은 급제하고 오겠노라 다짐하며 떠난 뒤 감감무소식, 절망한 금봉은 결국 숨을 거둔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에 뒤늦게 온 박달도 금봉의 환영에 이끌려 절벽에서 떨어진다. 전설은 노래를 만들고, 애절한 노랫말은 다시 이야기에 살을 입힌다.
맥락이야 어찌 됐건 박달재 전설은 현재진행형이다. 금봉과 박달의 모습을 새롭게 해석해 목각공원을 조성했고, 둘의 명복을 빌고 영원한 사랑을 소원하는 사당도 있다. 성각 스님의 조각품 목굴암과 오백나한전도 볼거리다. 목굴암은 1,000년 된 느티나무 속을 파고 불상을 새긴 법당이다. 고목에 새긴 오백나한 역시 감탄을 자아내는 조각이다.
◇목포 이난영과 영암 하춘화
송가인 덕에 트로트 열풍이 거세다. 트로트는 1930년 전후 국내 창작이 본격화됐고, 1935년 ‘목포의 눈물’에 이르러 형식이 정착됐다고 한다. 목포에는 이 노래를 부른 이난영과 관련한 유적이 곳곳에 있다.
노랫말에 등장하는 삼학도에 이난영공원이 있다. 가장 큰 대삼학도 중턱에 ‘목포는 항구다’ 노래비가 있고, 그 뒤 배롱나무 아래에 이난영이 잠들어 있다. 파주에 있던 그의 무덤을 2006년 이곳으로 이장했다. 양동 42번지 이난영 생가 터에는 그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유달산 자락에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있다.
목포에 이난영이 있다면, 영암에는 하춘화가 있다. 아버지 하종오씨가 딸이 데뷔한 1961년부터 50년 모은 자료를 고향 영암군에 기증했고, 군은 지난 10월 ‘한국트로트가요센터’를 개관했다. 센터로 들어서면 데뷔 당시 일곱 살이었던 하춘화 밀랍인형이 반긴다. “제가 하춘화예요. 금년에 일곱 살입니다. 노래란 것은….”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앳된 음성이 관람객을 웃음짓게 한다. 1층은 트로트역사관, 2층은 하춘화전시관으로 꾸몄다.
◇바람 부는 들길 끝, 삼포로 가는 길
‘삼포로 가는 길’은 서정적 음색으로 198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살랑거리는 리듬처럼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노래를 부른 강은철은 한 방송에서 ‘삼포는 듣는 사람이 가려고 하는 장소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삼포는 창원 진해의 한적한 포구다. 노래를 작사ㆍ작곡한 이혜민은 1970년대 후반 삼포마을에 여행 왔다가 이곳 풍경에 반해 노랫말을 썼다고 한다.
2008년 마을 초입에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가 세워졌다. 앞면에 노랫말이, 뒷면에 이혜민의 수필 ‘내 마음의 고향 삼포’ 일부가 적혔다. 이혜민은 삼포를 ‘동경의 그리움을 충족하기에 충분한 마을’이라 했다. 비 아래 음향 장치가 있어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온다. 마을 앞 포구에 낚싯배가 여러 척 정박해 있다. 관광지는 아닌데 묘한 매력이 있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자꾸만 노래를 흥얼거린다. ‘나도 따라 삼포로 간다고~.’
◇‘광화문 연가’ 따라 숨겨진 역사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에 등장하는 장소는 한국 근대 역사의 핵심을 관통한다. 눈 덮인 예배당은 19세기에 건축한 정동제일교회다. 건너편에 2008년 세상을 뜬 이영훈 노래비가 있다. 마이크 모양의 비에는 ‘붉은 노을’ ‘옛사랑’ ‘소녀’ 등 그의 주옥 같은 노래와 추모 글이 담겼다.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에는 옛것과 새것이 공존한다. 국세청 남대문 별관을 철거한 자리에는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 개관했다. 가려져 있던 성공회 서울성당이 모습을 드러내고 덕수궁 돌담 내부 길도 개방됐다. 옛 구세군중앙회관은 지난가을 ‘정동1928아트센터’로 다시 태어났다. 이곳에서 옛 러시아공사관이 있는 정동공원까지 1896년 아관파천을 기억하는 ‘고종의 길’이 이어진다.
서구식 호텔인 손탁호텔,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여관이 있던 이화여고 터에는 현재 아담한 찻집과 정동극장이 자리 잡았다. 극장 뒤쪽에 왕실 도서관이었던 중명전이 숨어 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아픈 역사를 품은 곳이다.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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