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 거주자에게 “부모님 힘 안 빌려도 되니 부러워” 문구
“정책 감수성 부족” 지적…LH “의도 잘못 표현, 즉시 교체할 것”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내건 행복주택 광고가 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뭇매를 맞고 있다. 광고 내용이 부모의 재정 능력이 좋은 이른바 ‘금수저’가 혼자 힘으로 내 집 마련을 해야 하는 ‘흙수저’를 부러워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면서, ‘정책홍보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한 누리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LH의 버스정류장 옥외광고에는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 이미지가 삽입돼있다. A가 “부모님이 집 얻어주실 테니 너는 좋겠다”라고 하자 B가 “부모님 힘 안 빌려도 되니 나는 네가 부럽다”고 답하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내가 당당할 수 있는가(家)! 행복주택’이라는 표어에 더해 “대한민국 청년의 행복을 행복주택이 응원합니다”라고 적혔다.
행복주택은 대학생·신혼부부·사회초년생 등의 주거 안정을 위해 직장·학교가 가까운 곳에서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할 수 있도록 국토교통부와 함께 LH가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이다. 입주자격인 소득기준은 대체로 도시근로자의 월 평균소득보다 낮거나 약간 높은 수준의 계층으로 한정돼있다. 이에 부모님이 집을 얻어줄 수 있는 정도면 집안 자산이 평균 이상일 가능성이 높은데 상대적으로 소득과 자산이 적은 사람에게 부럽다는 말을 하는 게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정책 대상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연이었다. 누리꾼들은 “정책을 만드는 높으신 분들의 생각인가보다, 그러니 정책이 이렇지”(고****), “부모님 힘 빌리고 안 빌리고가 얼마나 큰 건데 사이코패스가 만들었나”(쟈****), “저런 광고가 기안 검토 결재를 거쳐 저기 걸렸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현****), “마지막 승인한 사람은 최소 흙수저가 아니다”(디****), “임대주택에 대한 관점이 보인다”(씨****) 등의 비판적인 의견을 보였다.
아울러 “그럼 바꿀래?”(으****), “착각하고 있는데 둘 다 금수저다, 이미 본인 명의 재산이 있냐 없냐의 대화”(D****), “일반인들은 학자금 갚고 시작하는 게 기본인데 돈을 어떻게 모으나”(순****), “금수저가 저소득층에게 ‘난 니가 부러워, 굶어죽지 말라고 나라에서 돈도 주잖아’를 진심으로 말하는 수준이다”(모****), “종부세 많이 낸다고 한숨 쉬는 거랑 비슷한가 보다”(발****) 등의 자조적인 반응도 잇달았다.
LH 측은 이날 한국일보 통화에서 “사회에 여유가 있는 사람, 불편을 느끼는 사람 등 다양한 부류가 있지만 좋은 정책으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취지를 전달하고 싶었고 비하의 목적은 없었다”며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공사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나름 트렌드에 따라 재미·반전을 주고 코드를 맞추려 했던 것”이라 설명했다.
이어 “내부 검토 과정에서 우려가 나오기도 했지만 정책 대상에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 등 젊은 사람들이 많아 비하로 받아들이지 않고 양해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며 “의도와 다르게 잘못 표현이 된 것 같은데 문제를 직시하고 바로 교체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