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동(東)시베리아에서 생산된 천연 가스를 중국 북부 공업지역으로 공급하는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이 2일(현지시간) 개통된다. 이는 세계 에너지 시장을 흔드는 대규모 사업이면서 동시에 미국이라는 공통의 적에 맞서 양국이 더욱 밀착하는 전략적 고리로도 기능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화상 연결을 통해 양국을 잇는 가스관 개통식을 참관한다. 1,800마일(약 2,897㎞) 길이의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은 이르쿠츠크, 사하 등 러시아 동시베리아 지역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중국 북동지역까지 보내는 데 사용된다. 러시아는 개통 첫해 50억㎡를 시작으로 연간 대(對)중국 천연가스 수출량을 2025년 380억㎡까지 늘려 나갈 계획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성사됐다. 러시아에는 ‘서방의 제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하는 도구다. 천연가스 확인 매장량 1위인 러시아는 2014년 3월 크림반도 합병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가 시작되자 그해 5월 중국과 가스 공급 협약을 맺었다. 무려 4,000억달러(약 472조원) 규모인 이 계약으로 러시아는 현금 부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미국과 무역전쟁이 한창인 중국에는 협상 지렛대를 제공했다. 무역전쟁이 격화되기 전 중국은 탈(脫)석탄 정책의 일환으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늘리고 있었다. 중국이 지난해 미국산 LNG에 10% 관세를 매긴 데 이어 올해 이를 25%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던 건 러시아라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 라이스대 베이커공공정책연구소의 안나 미컬스카 연구원은 “일단 가스관이 설치되고 나면 수출 비용이 떨어진다”면서 “미중 무역협상이 체결돼도 미국산 LNG 수출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와 중국은 에너지 동맹을 발판 삼아 밀월(蜜月) 관계로 나아가는 분위기다. 러시아 정부에 따르면 양국의 교역량은 지난해 1,000억달러를 넘기며 정점을 찍었고, 러시아 외환보유고의 위안화 비율도 15%까지 뛰었다. 몽골을 통과하는 가스관 건설 등 ‘시베리아의 힘’의 후속 프로젝트도 착착 준비 중이다.
경제 외 다른 분야에서의 밀착도 가속화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9월 자국 군사 훈련에 처음으로 중국군을 초대해 합동 훈련을 실시했다. 지난 10월 일본 교도(公同)통신은 러시아와 중국이 군사동맹 체결 방침을 굳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에너지 전문가였던 에리카 다운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두 국가 간 연합에 대해 “미국 주도 세계질서 외에 대안이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한다”고 분석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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