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대학 식비 지원에 기부금도 적극적으로 활용
건강한 미래 인재 양성하고 정부는 쌀 소비 촉진 효과
경남과기대 1,000원의 아침 정식 메뉴. 경남과기대 제공

고려대 재학생 권모(28)씨는 의무소방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불면증을 얻었다. 23개월 간 구급차와 화재진압차량을 타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2, 3교대로 근무했기 때문. 낮에는 미칠 듯 졸리고 밤에는 정신이 또렷해지는 복학 생활에 괴롭던 권씨가 지금처럼 불면증을 이겨 낸 비결은 “매일 아침 학교에 가서 아침을 먹겠다”는 결심을 지킨 덕이었다. 지난해 말 학교 학생식당에서 단돈 1,000원에 아침식사를 제공한다는 솔깃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면 세우기 힘든 계획이었다. 권씨는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해지면서 불면증이 상당히 호전됐다”며 “주머니 사정도 좋아졌고 학업 집중도도 향상됐다”고 말했다.

정부와 대학이 손 잡고 ‘저렴한 아침’ 제공에 나서면서 이른 아침부터 학생식당을 찾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7년부터 대학생 급식비를 지원하는 ‘1,000원의 아침밥’ 사업 덕분이다. 통상 3,000~4,000원이 넘는 식사를 그대로 제공하면서 학생은 1,000원만 내고 정부가 1,000원을, 나머지는 대학이 부담하는 방식이다.

지난 3년 간 서울대, 인천대, 울산대, 상명대 등 전국 대학 수십 곳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수혜 학생은 △2017년 14만5,000명 △2018년 27만1,000명 △2019년 36만1,000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일부 대학은 정부 지원 없이도 유사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17일 오전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제1학생회관 식당에서 ‘1,000원의 아침밥’을 먹기 위해 학생들이 줄을 서고 있다. ‘1,000원의 아침밥’은 대학생들의 아침밥 먹는 건강한 식습관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대학 측과 함께 진행하는 사업이다. 연합뉴스
◇학생 건강-쌀 소비 함께 증진

농식품부가 이런 사업을 추진한 건 결식률이 높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아침밥 먹는 문화를 확산시키고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20대 아침식사 결식률은 52.0%로, 2위 30대(37.1%)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20대 절반이 아침을 거르는 와중에 우리 국민의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은 2009년 74.0㎏에서 지난해 61.0㎏으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저작권 한국일보}아침식사-박구원 기자

대학 입장에선 재학생 복지를 증진시키는 동시에 학생식당을 활성화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사업에 참여한 부경대 관계자는 “올해 인건비와 식자재비가 올라 재정적 어려움이 없진 않지만, 아침식사 자체가 학생 복지인 만큼 중단할 수 없다”고 했다. 고려대의 경우 평소 교내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 학생이 10명 이하였지만 사업 시행 후 하루 평균 355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고려대가 제공하는 1,000원의 아침밥. 고려대 제공
경남과기대 1,000원의 아침 간편식 메뉴. 경남과기대 제공
◇“밥값 덜 드니 부업 줄이고 학업 열중”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농식품부가 지난해 사업 참여 대학의 교직원 및 학생 1만6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92%가 “사업이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부경대의 경우 정부지원 사업 기간 동안 당초 예상했던 학생수(3만3,500명)보다 2배 이상 많은 7만1,000명이 몰릴 정도였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발길을 끄는 건 저렴한 가격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이 편의점 삼각김밥 1개 가격으로 제대로 된 한끼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 고려대생 심모(24)씨는 “아침식사 지원 프로그램 덕분에 하나 더 하려던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부경대 담당자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한 학생은 오전 10시쯤 1,000원에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저녁만 따로 사먹는다고 했다”며 “친구 3명이 4,000원으로 메뉴 네 개를 골라 배불리 먹는 모습도 봤다”고 전했다.

1,000원의 아침을 계기로 규칙적인 아침식사 습관을 길렀다는 학생들도 많다. 경남과기대에 재학 중인 홍서영(20)씨는 “아침을 먹으니 오전 수업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했고, 고려대에 다니는 전모(20)씨는 “가격이 저렴해 아침을 챙겨먹을 의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고려대 자체 설문조사에 따르면 “1,000원의 아침밥을 계기로 아침식사 횟수를 늘리겠다”는 학생 중 41.8%가 주당 5~7회를 목표로 잡았다.

부경대 학생들이 1,000원의 아침을 배식받고 있다. 부경대 제공
◇“아침식사가 학생복지” 대학도 적극적

각 대학은 저마다 특색에 맞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 이천시에 위치한 청강문화산업대는 지역 특산물인 이천쌀을 활용해 아침밥을 지으며 다른 식자재도 가급적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다. 또 학내에 조리, 식품개발 등을 전공하는 푸드스쿨이 있어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직접 아침식사를 짓고 있다.

진주공립농업학교를 전신으로 하는 경남과기대는 농업 발전을 위해 세워진 대학인 만큼 직접 재배한 쌀로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이 학교 학생들은 매년 대학이 소유한 4,000㎡ 규모의 종합농장에서 ‘추수감사절 벼 베기’ 행사를 하는데, 이때 수확한 쌀을 이용하는 것이다.

부경대는 생활협동조합뿐 아니라 학내에 입주한 사설 운영업체까지 모두 사업에 참여해 다양한 아침식사 메뉴를 선보인다. 이들 5개 업체에서 고를 수 있는 아침식사 메뉴는 정식 3종, 소고기국밥, 김치찌개, 오므라이스 등 총 15개에 달한다. 부경대 관계자는 “과거엔 아침에 야채죽만 제공하다가, 농식품부와 함께 사업을 하게 된 2017년부터 메뉴를 다양화했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학생들이 1,000원의 아침밥을 배식 받고 있다. 고려대 제공

대학 입장에서 1,000원의 아침 사업 진행에 있어 가장 큰 애로는 ‘돈’이다. 학생이 내야 할 식사값을 정부와 대학이 대신 내주는 서비스이기 때문. 이에 각 대학은 학교 운영비와 기부금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고려대는 졸업생, 동문,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소액정기기부 캠페인 ‘KU PRIDE CLUB(고려대 프라이드 클럽)’ 기부금을 이용하고 있다. 1,000원의 아침 사업에 선정돼 정부 지원을 받을 때는 기부금으로 한끼 밥값 중 2,000원을, 지원이 없을 땐 3,000원을 충당하는 식이다. 고려대 관계자는 “지난해 기부 캠페인과 아침밥 사업을 연계하자 신규 기부자가 50% 늘어나는 효과도 있었다”고 했다.

정부는 앞으로도 관련 예산을 꾸준히 편성해 대학들을 지원할 방침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내년 쌀 소비 활성화 예산에도 1,000원의 아침 사업 예산이 들어갔다”며 “내년 초 각 대학에서 사업 신청을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공동기획: 농림축산식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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