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세종의사당(국회분원) 설치 사업의 운명이 안갯속이다. 설치 근거를 담은 국회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고, 내년 정부 예산안에 담긴 설계비 반영도 여의치 않다. 여야의 ‘협치 부재’로 국회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21대 국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일 국회에 따르면 다음달 10일 마무리되는 20대 정기국회에서 국회법 개정안 처리가 어려울 전망이다.
이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이 국회 세종의사당 설치 등의 내용을 담아 대표 발의했다. 국회 운영위 소위는 지난달 28일 이 법안을 산정했지만 처리되지 못한 채 심사안건으로 분류됐다. 이로 인해 29일 열린 전체회의 안건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 와중에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을 처리하려는 민주당과 필리버스터를 동원해 이를 저지하려는 제1야당인 한국당 간 대치로 정국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어, 국회 운영위를 다시 소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법 개정안 처리가 어려워지면서 예결특위에 제출된 세종의사당 설계비(10억원) 반영도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로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언제 열릴지도 모르는데다 한국당이 예산 반영을 위해선 국회법 개정안이 먼저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올 연말이나 내년 초 임시국회를 소집해도 세종의사당은 ‘찬밥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지역구 문제 등에만 신경 쓰며 국회법 개정안이나 예산 논의를 위한 협상테이블은 논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세종의사당이 총선 정국에 휘말리며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야 모두 충청권 표밭에서 우위를 가져가기 위한 의제 가운데 하나로 세종의사당을 내세울 게 뻔하다.
한국당 정용기(대전 대덕구) 정책위의장 등 충청권 국회의원들이 추진을 외치고, 송아영 세종시당 위원장도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조차도 총선을 겨냥한 메아리일 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세종의사당 설치가 지지부진한 것에는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에게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정치권 한 인사는 “한국당은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당시 후보가 국회 이전을 약속했지만 후속 조치는 전무하다. 오히려 2020년 정부예산 100대 문제사업에 세종의사당 설계비를 포함시키는 등 입장을 뒤집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이어 “민주당이 진정성은 있더라도 ‘자신들만 옳다’는 일방통행식 태도로 야당의 협치를 원만히 이끌어내지 못했고, 선거용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고 꼬집었다.
충청권 시민단체가 참여한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ㆍ상생발전을 위한 충청권 공동대책위원회’는 2일 “500조가 넘는 새해 예산에서 세종의사당 설계비는 매우 작은 것이지만 실질적인 행정수도 완성을 향한 첫걸음인 만큼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충청권 공대위는 특히 “여야 충청권 의원들이 세종시 원안 사수 투쟁에 준하는 수준으로 공동 대응해 세종의사당 설계비 반영부터 이뤄내라”고 촉구했다.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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