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룩’ 벗고 독자노선 구축 메시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정치 행보는 물론이고 패션 스타일을 통해서도 ‘김일성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런 김 위원장이 최근 달라진 모습으로 인민 앞에 섰다. 조부를 연상시키는 ‘김일성룩’을 탈피해 파격적인 가죽 롱코트 패션을 선보인 것. 북한 최고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이 계산된 연출인 만큼, 김 위원장이 자신만의 노선을 구축하겠다는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발신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지난달 29일 보도한 사진을 보면, 김 위원장은 같은 달 28일 함경남도 연포 일대에서 실시한 초대형 방사포 시험 사격 참관 당시 가죽 소재의 검은색 코트를 입고 등장했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더블 버튼 트렌치 롱코트 디자인으로, 북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과감한 스타일이었다. 김 위원장은 코트의 벨트를 꽉 조이고 나타났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서북5도에 인접한 창린도에서 해안포 사격을 지시할 때 아이보리색의 긴 트렌치 코트를 입었다.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긴 코트 안에는 회청색의 셔츠와 바지를 입었다. 김 위원장이 스타일 변화를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라는 평이 나온다. 김일성 주석의 패션을 모방하는 데서 벗어나 ‘젊은 지도자’의 독특한 패션 감각을 선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후계자 지명 때부터 김 주석을 닮은 외양으로 주목 받았다. 김 주석처럼 짧게 자른 머리 모양을 고수했고, 주요 행사 때는 김 주석을 떠올리게 하는 옷차림을 선보였다. 김 주석의 행동을 따라 하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후광’을 노린 의도적 행보로 해석됐다. 대내적으로 김 주석의 행보를 재연하면서 빈약한 정치 기반을 메우고 후계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4월 2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방문 당시 김 위원장은 김 주석이 즐겨 입었던 검은색 오버코트와 중절모 차림이었다. 코트 안쪽으로 오른손을 밀어 넣는 김 주석의 버릇도 여러 차례 재현했다. 김 위원장이 2016년 열병식과 신년사 발표 등 대형 행사에서 선보인 정장과 넥타이, 뿔테 안경 모두 김 주석을 떠올리게 하는 패션 소품이었다.
김 위원장은 선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야전 점퍼’ 스타일은 따라 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은둔형 지도자’로 불렸던 아버지보다는 포용적 이미지로 체제 내부 호감도가 높았던 할아버지를 롤 모델로 삼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최근 들어 김 주석의 스타일 대신 자신의 스타일을 선보인 것은 선대 정권을 넘어서 자신의 통치를 펼치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체제가 안정됐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해석도 있다. 김 위원장은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을 내세우며 ‘경제 올인’이라는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 김정일 정권 당시 금강산에 조성한 남측 관광시설의 철거를 지시하는 등 선대 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것도 ‘김정은표 노선’에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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