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보이는 64m 높이의 정류탑에서 저유황유가 만들어집니다.”
지난달 27일 SK그룹의 에너지ㆍ화학 관계사의 생산 설비가 모여 있는 울산CLX(콤플렉스) 내 감압잔사유탈황설비(VRDS) 공사 현장. 이상희 SK에너지 공정혁신실 프로젝트리더는 “현재 VRDS 공정률은 98% 수준으로 토목ㆍ철골 공사와 장비 설치 등을 모두 마무리 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SK에너지는 내년 1월 VRDS를 완공한 뒤 2개월 동안 시운전을 거쳐 3월부터 저유황유를 만들 계획이다. 문상필 SK에너지 공정혁신실장은 “본격적으로 상업 운전이 시작되면 하루 4만 배럴의 저유황유를 생산하게 될 것”이라며 “VRDS 가동으로 매년 2,000억~3,000억원의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와 경유, 등유 등 석유제품을 만들고 남은 저부가가치 중질유에서 고부가가치 저유황유를 뽑아내는 ‘마법’은 VRDS에서 일어난다. 20개 이상의 탄소가 포함된 탄화수소 혼합물인 중질유는 점성이 커 끈적끈적한데다, 끓는점도 높아 쉽게 증발되지 않는다. 그래서 VRDS에선 고온고압 상태의 중질유에 수소를 첨가해 중질유를 경질유로 분해한다. 그런 다음 64m 높이의 정류탑에 흘려주면 비중에 따라 다시 경유와 휘발유, 저유황유로 분리된다. 이들 제품을 만들고 남은 황화수소는 황 회수 설비(SRP)로 보낸다. 이렇게 얻은 황은 비료를 제조하는데 쓰인다.
SK에너지는 VRDS 건설을 위해 8만3,800㎡ 부지에 1조원을 쏟아 부었다. 배관 길이만 240㎞에 달한다. 높이로 따지면 해발 836m인 북한산 백운대 287개를 합한 규모다. 설치된 기계 장비 무게는 2만8,000톤으로 관광버스(15톤) 1,867대 수준이다. 일 평균 1,300여명, 누적 총 88만명의 노동자가 힘을 모았다. SK에너지가 2008년 약 2조원을 투입한 제2고도화설비(FCCㆍ중질유 촉매분해공정) 이후 최대 규모의 석유사업이다. VRDS 공사를 ‘S-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인 걸 보면 SK에너지가 이 사업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문 실장은 “영어 단어 황(Sulfur)의 S, SK의 경영정신인 ‘수펙스(SUPEX)’를 달성하겠다는 의지 등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수펙스는 ‘Super Excellent’의 줄임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뜻한다.
SK에너지가 대규모 투자에 나선 이유는 정제마진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저유황유가 새로운 효자 사업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배기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에 따라 내년 1월부터 선박유의 황 함유량 기준이 기존 3.5% 이하에서 0.5% 이하로 바뀐다. 고유황유를 저유황유로 바꾸면 황산화물 배출량이 1톤당 24.5㎏에서 3.5㎏으로 약 86% 줄어든다. 이에 따라 선박유 시장은 기존 벙커씨유 등 고유황 중질유에서 저유황 중질유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현재 하루 평균 약 350만 배럴이 쓰이는 고유황유(전체 선박유의 70%)가 내년에는 사용량이 140만 배럴로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저유황유로 연료를 바꾸지 않을 선박은 배기가스 탈황 장치인 스크러버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지만, 한 척당 설치 비용이 70억~100억원에 달해 부담이 만만치 않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전 세계 선박 중 올해 말까지 스크러버를 장착할 배는 약 3,000대 수준으로 많지 않다”며 “향후에도 스크러버 설치 수요가 크게 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경목 SK에너지 사장은 “IMO 환경규제에 적극 대응하면서 해상 연료유 사업 강자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울산=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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