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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름

입력
2019.12.02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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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 부모 기자회견에서 고 김태호군의 어머니(왼쪽 두번째)가 눈물을 흘리며 어린이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률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 스쿨존에 과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일명 '민식이법'은 이날 본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이었으나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선언에 따른 본회의 무산으로 처리되지 못했다. 연합뉴스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 부모 기자회견에서 고 김태호군의 어머니(왼쪽 두번째)가 눈물을 흘리며 어린이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률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 스쿨존에 과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일명 '민식이법'은 이날 본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이었으나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선언에 따른 본회의 무산으로 처리되지 못했다. 연합뉴스

혼자 판단하기로는 한 세대, 아니 한 세기에 한 명쯤 나올 법한 뛰어난 작가인 테드 창이 쓴 ‘일흔두 글자’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 즉 평행우주 속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다. 중세의 연금술과 유대교의 밀교에서 생명의 기원에 관해 상상했던 이론을 근거로, 사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자동인형’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마침내 인간을 복제할 수 있게 되는 내용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름’이 지닌 힘이다. 첫 장면에서 찰흙 인형을 가지고 노는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은 인형의 형태를 이렇게 저렇게 바꾸면서 어떤 이름이 인형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지 실험한다. 그러니까 소설 속 세계에서는, 주어진 형상마다 가장 적절한 이름이 따로 있고, 그것을 찾아서 호명하면 형상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러한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학문인 ‘명명학’에서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 우주와는 별도의 어휘적인 우주가 존재하며, 어떤 물체와 그에 조응하는 이름을 결합하면 잠재된 힘이 발현한다.”고 설명한다.

장황하게 소설 이야기를 늘어놓은 까닭은, 오늘 우연히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누군가의 이름을 언급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민식이 어머님 아버님, 하준이 태호 유찬이 해인이 어머님 아버님, 저희 모두 이 법안을 통과시키고 싶습니다. 국회의장께 제안합니다.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민식이, 하준이, 태호, 유찬이, 해인이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포털에 접속해서 검색해 보았다. 나처럼 검색해 본 사람이 많았는지, ‘민’이라고 첫 글자를 입력하자 곧 ‘민식이법’으로 자동 완성되었다.

검색한 내용에 의하면, ‘민식이법’은 어린이보호구역 내에 안전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어린이에게 상해를 입힌 운전자는 가중 처벌하는 내용, ‘하준이법’은 주차장에 미끄럼 방지 고임목 등을 설치해 안전 관리를 강화하는 내용, ‘해인이법’은 어린이 안전사고에 대한 응급조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이다. ‘태호ᆞ유찬이법’은 어린이를 태워 운행하는 모든 어린이 통학버스를 신고 대상으로 확대하는 내용, ‘한음이법’은 어린이 통학버스 내ᆞ외부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이름을 빌려온 이런 법들은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 때문에 본회의 통과가 어려운 것도 있고, 해당하는 국회의 각 위원회에서조차 통과 못 한 것들도 있다고 한다.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테드 창의 소설을 떠올린 것은 ‘이름이 지닌 힘’ 때문이었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날마다 부르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에는 분명히 어떤 힘이 있다. 솔직히 나라면, 아무개법이라며 어느 날 갑자기 놓쳐버린 자식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온 세상이 주목하고 있는 자리에서, 여전히 애틋하기만 한 이름이 욕망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보고 듣는 심정이 어떨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당신들 그렇게 하라고 우리 아이들 이름 내준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슬픔에 마음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저 소설 속 이야기처럼 헛된 망상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하라고 내준 게 아닌’ 이름들이 힘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 세상과 깊이 연결된 이름의 세상에서 더 넓은 자아, 더 큰 사랑과 결합하여 뜨거운 에너지를 갖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이 세상으로까지 밀려오게 되기를. 아픈 이름들을 함부로 호명하는 천박함을 사라지게 만들기를.

부희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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