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 사진으로 인스타그램 스타된 예너 토룬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색종이를 잘라 붙인 듯한 사진이 최근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무지갯빛 건물이나 테트리스 게임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는 블록들을 담고 있다. 색의 강렬한 대비와 기하학적인 형태, 날카로운 구도로 이뤄진 사진은 인스타그램의 숱한 이미지 사이에서 단연 돋보인다.
역량 있는 신진 현대 작가들을 발굴해 세계적인 스타로 키우는 영국의 사치 갤러리도 사진들에 반했고, 사진을 찍은 무명 터키 건축가 예너 토룬(37)과 지난해 전속계약을 맺었다. 토룬의 사진 40여점이 서울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열리는 전시회 ‘뮤지엄 오브 컬러’에서 국내 처음으로 소개된다. 지난달 28일 한국을 찾은 토룬을 전시장에서 만났다.
이스탄불 기술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토룬은 8년여간 건축회사에서 설계를 했다. 토룬은 “조직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데 염증을 느껴 나만의 창의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건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며 “같은 건물이어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사진으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 말부터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다. 그는 아주 가까이에서 건물의 일부만 포착했다. 토룬은 “건물이 있는 장소와 용도, 크기와 성격 등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라며 “건물이 가지고 있는 명료함과 단순함을 극대화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색은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가 찍은 사진은 빨간색과 노란색, 초록색과 핑크색 등 건물의 색감이 두드러진다. 현실 건물이지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컬러 헌터’라 불리는 그는 “촬영장소를 찾아 다닐 때 무엇보다 컬러를 최우선 순위로 고려한다”라며 “선명한 컬러는 내가 목표로 하는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생기 넘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수불가결하다”라고 말했다.
토룬의 사진은 현실과 초현실, 실제와 상상, 가짜와 진짜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는 “색 보정 작업을 일부 하지만, 대부분은 실제를 찍은 사진”이라며 “같은 자리에서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날씨와 위치, 빛 등 최적의 환경을 한달 넘게 기다리기도 한다”고 했다.
알록달록한 건물을 피사체로 삼는 토룬의 작품들은 밝고 긍정적이다. 그는 “사진에 나오는 창문, 파이프, 배관, 통풍구, 건물은 일상적인 풍경”이라며 “일상 공간에 건축학적 디테일을 살리고, 색을 부각시키면 좀 더 재미있고 매력적이고 새롭게 보인다”고 말했다.
토룬이 사진을 밝게 찍는 건 역설적으로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찍은 건물은 주로 이스탄불 교외 지역에 있다”라며 “그런 건물들은 이스탄불의 정체성과 거리가 먼, 마치 본질을 숨기기 위해 색을 칠한, 성형 수술한 것 같은 건물이다”고 비판했다. 건축가가 건축이 아닌 사진으로 사회와 소통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SNS를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라며 “건축가이기 때문에 기존 건물을 새롭게 볼 수 있었고, 이런 다양한 관점이 많아질수록 더 풍성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뮤지엄 오브 컬러’전은 색을 주제로 러시아 사진작가 크리스티나 마키바와 윤새롬, 아트놈, 린 더글라스 등이 참여했다. 내년 3월 15일까지 열린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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