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오지에서 한국인들 후원 받아 의대생까지...
“환자가 되어 몸으로 배운 한국의 의료는 최고 수준”
“이번에는 수술을 받았지만, 다음에 올 때는 한국 의술을 배우고 싶어요!”
캄보디아 의대생이 대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무료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11월 초순에 입국한 위레악(21·프놈펜대학 의대4)씨는 보름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21일, 허리에 복대를 차고 병원 정문을 나섰다. 그는 올해 초 발병한 디스크 질환으로 학업을 중단할 위기까지 갔지만 그의 사연을 접한 병원 측에서 선뜻 무료 시술을 해준 덕에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병원장이 병원 문 앞까지 따라 나와 “아프면 언제든지 다시 찾아오라”며 어깨를 두드렸고, 그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원장의 손을 좀처럼 놓지 못했다. 위레악씨가 조심스럽게 “캄보디아 의대를 졸업한 후 이 병원에서 인턴과정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병원장은 즉시 “언제든 오면 받아주겠다”고 화답했다.
“메디시티대구의 위상을 위해 최선을 다해 치료”
위레악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의 모 선교단체가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에서 5시간 넘게 떨어진 썬단 오지 마을에 선교 활동을 갔다가 위레악을 만났다. 첫눈에도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고 약해 보였다. 마을 어른들은 위레악이 어릴 때 종양 수술을 해서 성장도 늦고 체력도 약하다고 전했다. 선교단체에서는 허약한 몸으로 유난히 높은 학구열을 보이는 그를 외면할 수 없어 정기적으로 후원했고, 위레악은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현지의 의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불행이 찾아왔다. 의대 입학 후 허리에 만성통증 증상이 나타난 것이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견딜 만했지만, 중순 즈음 너무 아파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벌어졌다. 병원에서는 디스크가 터져 신경을 누르는 추간판탈출증이라고 진단했다. 수술비만 1,000만원이 넘었다. 게다가 열악한 현지 의료환경 탓에 수술 부작용도 만만찮을 거였다.
그는 다시 한국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사연을 접한 대구의 한 종합병원 이사장이 선뜻 무료수술을 해주겠다고 했다. 윤태경 병원장은 결정을 내리는데 본인의 경험도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다. 가정 형편이 녹록지 않아 의대에 다니면서 막노동판 전전하던 젊은 시절이 생각났다는 것.
그는 “할 수 있는 검진과 치료는 모두 다 지원했다”면서 “캄보디아 의대생 수술이 메디시티대구의 위상을 증명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지역 의료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한국에 받은 도움 마음에 새기고 베푸는 의사 될 것”
위레악씨는 입원 기간 동안 병원에서 가장 부지런한 환자로 통했다. 거동이 가능해진 뒤로 복대를 찬 채 수첩을 들고 병원을 휘젓고 다녔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캄보디아의 의료현실과 비교해 한국 병원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의 수첩에는 병원 환경과 구조, 병원과 관련된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캄보디아는 아직도 의료시설과 기술이 낙후돼 이 같은 의료환경은 꿈도 꾸기 힘듭니다. 캄보디아 도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메모하느라 허리가 아픈 줄도 몰랐어요. 며칠 전에 대구가 한국에서 인정하는 ‘메디시티’라는 말을 들었는데, 제가 직접 체험해보니 그 타이틀이 충분히 납득이 되더군요.”
수술을 집도한 배영관 신경외과 전문의는 “디스크 수술은 간단하지만 제대로 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생기기 쉽다”며 “한국의 의료 술기는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기 때문에 예비 의사인 위레악씨가 몸으로 체험한 한국의 의료는 캄보디아 의료계에 좋은 사례로 전해질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위레악씨는 “무엇보다 친절한 의료진 감명을 받았다”면서 “아픈 몸을 고친 것도 감사하지만, 환자의 입장에서 ‘의료서비스’라는 용어를 실감한 것도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아직 영양실조로 인한 위장질환이 흔한 캄보디아에서 제가 꿈꾸는 내과 전문의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 한국이 저에게 베푼 은혜를 마음 깊이 새겨서 고국에 돌아가 널리 베푸는 의사가 되겠습니다.”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