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필리버스터 방침에 본회의 연기되자 눈물
“도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 선거 때가 되면 표를 받기 위해 국민들 앞에서 굽실거리고, 지금은 (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국민들이 무릎을 꿇어야 하고.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아이들을 이용해서 왜 이렇게 하는지 꼭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이름은 이렇게 사용하라고 법 앞에 붙인 게 아닙니다.” (용인 어린이집 차량 사고로 허망하게 딸을 잃은 해인이 아빠 이은철 씨)
‘민식이법’ 등의 통과를 촉구해 온 안전사고 피해아동의 가족들은 29일 “아이들이 정쟁의 협상 카드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이날 자유한국당이 국회 본회의 상정이 임박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저지 카드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카드를 꺼내 든데다, 한국당이 국회의장을 향해 우선 본회의를 열면 민식이법을 우선 처리해주겠다’고 통보하면서, ‘아이들이 거래 수단’이냐는 반발이 나온 것이다. 당초 이날 본회의에서는 ‘유치원 3법’, '민식이법', '데이터 3법', 대체복무제 관련 법안 등 주요 민생 경제 법안이 논의될 예정이었다.
이날 국회 행전안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홍익표 의원 및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와 함께 국회 정론관에 들어선 피해아동 부모님들은 이런 상황이 “정말 아이들을 향한 심각한 모독이 아니냐”고 반문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송도 축구클럽 셔틀버스 사고로 하늘로 간 태호의 아빠 김장회씨는 “아내가 (법안 통과를 위해) 다른 어머니들과 함께 (의원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 정말 그만하고 싶고 그렇게 비굴할 수가 없었다”며 “그래도 법안이 통과되면 아이를 위한 것이니까 꾹 참았는데, 오늘 (나 원내대표의 태도를) 보니 너무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식이법 하나만이라도 해달라는 게 그렇게 어렵냐”며 “이게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라니, 정말 이 나라가 싫다”고 토로했다.
태호 엄마 이소현씨는 “평범한 엄마이자 직장인인 제가 왜 생업을 다 내려두고 매일 국회로 와서 아이들 생명을 지켜달라는 호소를 해야 하고, 그게 정치적으로 이용이 돼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며 “저는 5개월 임신부다. 도대체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라는 거냐”고 말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또 “아이들의 이름을 거론한 걸 반드시 사과해달라”며 “문제점은 저희가 던졌으니 나머지는 (국회가) 반드시 해결하시라”고 당부했다.
해인이 엄마 고은미씨는 “(국회가) 얼마나 더 저희를 비참하게 만드실 거냐”며 “저희 아이들은 이름이라도 하나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고,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을 지켜 달라는 건데 그거 하나도 못하면서 무슨 국민 위한 정치한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이어 “아이들을 가지고 협상하려고 하지 마시고 정치다운 정치 똑바로 하시길 바란다”고 했다.
하준이 엄마 고유미씨는 “이런 분들을 제가 세금으로 밥 먹이고 차 태워가면서 이 국회 보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정말 금수만도 못한 야만의 정치는 누가 하고 계신지 얼굴 좀 보시길 바란다”며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직격했다.
민식이 엄마 박초이씨는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신호등이 없고, 과속 단속 카메라가 없어 아이들이 위험에 처해 있어, 그 카메라를 달아달라고 하는 것이 왜 정치인들의 협상 카드가 돼야 하는지 참 모르겠다”며 “정치에 대해 몰라서 이런 대접 받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양쪽에서 이용만 당하다 버려지는 거 아닌지. 왜 내 떠나간 우리 아이들을 그 협상카드로 써야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 불러주고 싶어도 마음 아파 불러줄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의원들이) 그렇게 얘기하면 안됐다”고도 일갈했다. 민식이 아빠 김태양씨는 “이 나라와 이 국회를 향해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다”며 “그게 과연 사람으로서 할 짓이냐, 그게 국회의원이냐”고 분노했다.
장하나 활동가는 “손 꼽아 기다려온 법안의 본회의 상정이 사실상 무산됐다”며 “어머니들이 이 지옥 같은 하루를 또 맞이해야 하고 언제까지도 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나경원 원내대표는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다면 민식이법 등 어린이 생명안전법안 본회의 통과시켜주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며 “국회가 아이들의 생명을 얼마나 경시하고 있냐”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 발언을) 철회하지 않으면 이건 이미 떠나 보낸 아이들에 대한 정말 심각한 모독 아닌가 생각한다”고 발언 철회와 사과를 촉구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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