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협상 재개 공식화하며 병력 감축 의지 피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미국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맞아 분쟁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부대를 깜짝 방문했다. 지난해 말 이라크 미군 부대 방문 당시 곳곳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을 시사하는 정황이 노출돼 보안 논란이 제기된 것을 의식한 듯 취임 후 첫 번째 아프간 미군 부대 방문에선 정보가 새나가지 않도록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갖가지 연막술이 동원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 33분 아프간 바그람 공군기지에 도착해 2시간 30분가량 머물며 현지에 파병된 미군 장병들을 격려했고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과 짧은 양자회담도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탈레반이 합의를 원하고 있다”며 탈레반과의 평화 협상 재개를 밝혔다. 지난 9월 탈레반과의 평화 협상을 중단한 지 두달여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휴전을 원치 않았지만 지금은 휴전을 원한다”며 “아마 그런 방식으로 풀릴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우리는 합의가 이뤄지거나 완전한 승리를 얻을 때까지 머물 것이다”고 말하면서도 아프간 주둔 미군 병력을 8,600명으로 감축하기를 원한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현재 아프간에 1만2,000명~1만3,000명가량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과 탈레반 협상 대표는 지난 9월 아프간이 테러세력을 지원하는 곳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전제로 주둔 미군을 8,600명 규모까지 줄이는 내용을 포함한 평화협정 초안에 합의했으나 막판에 결렬됐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번 방문은 통상 분쟁지역 대통령 방문에서 이뤄지는 보안 절차 보다 더 은밀하게 진행됐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자신의 별장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를 찾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저녁 7시20분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향하는 좌석이 4개뿐인 소형 군용기에 조용히 몸을 실었다. 9시30분 기지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오후 10시8분께 격납고 내에 감춰져 있던 ‘두 번째’ 대통령 전용기에 올라 아프간으로 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플로리다로 갈 때 타고 갔던, 국제적으로 ‘에어포스 원’으로 알려진 전용기는 팜비치 공항에 그대로 남겨둔 상태였다. 백악관은 또 대통령 일정표에서도 28일 오후 3시 팜비치에서 장병들과 영상통화를 갖는다는 가짜 일정을 만들어 배포했다. 압권은 대통령 트윗 계정으로, 아프간을 오가던 28일 오전 추수감사절 축하 트윗이 게재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동선을 숨기고 플로리다에 머물고 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연막 장치였다. 아프간에 도달하기까지 16시간의 비행은 온전히 베일에 가려진 채였다.
이는 지난해 말 이라크 부대 깜짝 방문이 사전에 들켰던 사례를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당시 대통령 일정표가 비어 있고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도 잠잠했던 데다 영국 요크셔 상공을 날아가는 에어포스 원의 사진까지 찍혀 소셜 미디어에 공유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분쟁 지역 군부대를 방문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게 나돌았다. 이번 방문에선 동행한 기자들도 휴대폰 등 전송기기를 압수당했고 행선지도 아프간 도착 2시간 전에야 알게 됐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태운 전용기가 13시간 비행 후 착륙한 바그람 기지에는 두 대의 감시 비행기가 돌아다녔고 작은 불빛 외에는 조용하고 깜깜했다. 중동을 순방 중이던 마크 밀리 합참 의장이 대통령을 맞이했다. 바그람 기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가니 대통령도 몇 시간 전에야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이라크 방문은 시리아 철군 발표 후 거센 정치적 후폭풍 속에 이뤄졌다면, 이번 방문은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인한 탄핵 조사 와중에 진행돼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위험 지역 방문이란 시각도 나온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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