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 상단에 ‘질문’, 하단에 ‘예 또는 아니오’ 답변을 담배꽁초로 선택
담배꽁초는 거리의 천덕꾸러기다. 2015년 실내흡연 전면 규제 이후 흡연자들은 거리로 내몰렸지만, 흡연실이나 쓰레기통 부족 탓에 거리는 담배꽁초로 몸살을 앓아왔다. 이 중 상당수는 빗물받이 안쪽까지 흘러 들어가면서 미세 플라스틱 등 하천오염의 주범으로 전락했다. 그랬던 담배꽁초에게도 안정적인 거주지를 마련해 준 곳이 있다.
서울 영등포구는 ‘담배꽁초 무단투기’를 해결할 아이디어로 담배꽁초 쓰레기통 ‘꽁초픽(사진)’을 구내 배치하고 이달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고 29일 밝혔다. 꽁초픽 운영은 서울시에선 처음이다.
‘꽁초픽’은 담배꽁초의 ‘꽁초’와 선택을 뜻하는 ‘픽(pick)’의 합성어로, 전용 쓰레기통에 담배꽁초를 버리면서 투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깨끗함’과 ‘재미’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꽁초픽’을 자체 개발하고 320여 개의 상점이 밀집된 상권지역 ‘영등포 삼각지’에 10개를 설치했다.
‘꽁초픽’ 상단엔 설문조사 질문이 적혀있고 하단 왼쪽과 오른쪽에 답변이 적혀있다. 주민은 자신이 생각하는 답이 적힌 투입구에 담배꽁초를 버리면 된다. 예컨대 ‘영등포구에 가장 필요한 것은?’이라는 질문에는 ‘도서관 또는 공원’이, ‘영등포 대표 공원은?’이라는 질문에는 ‘영등포공원 또는 선유도공원’이 적혀 있어 이 중 마음에 드는 한 곳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방식이다.
꽁초 투표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담배수거함 전면을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로 제작해 투표 결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투입구는 담배꽁초 크기로 작게 제작하고 삼각 지붕을 세워 담배꽁초 쓰레기통에 종이컵, 캔 등 다른 종류의 쓰레기들이 쌓이는 것을 방지했다.
특히, 기존에 관에서 설치한 쓰레기통이 관리부실로 주변까지 지저분해 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영등포동 주민센터-영등포동 중앙자율방범대-상점주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민간주도 운영체계를 구축했다.
10개의 쓰레기통과 1:1로 협약을 체결한 영등포삼각지 내 상인은 상점 앞에 높인 ‘꽁초픽’ 청결을 수시로 관리하고 동주민센터와 협의해 담배꽁초 쓰레기통의 질문지를 교체하는 등의 임무를 맡게 된다. 또한 상인 순찰 조직인 영등포동 중앙자율방범대가 수시로 모니터링을 실시, 관주도가 아닌 주민이 주인의식을 갖고 자체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영등포동 중앙자율방범대 박균영 대장(72, 남)은 “주민 스스로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결실인 만큼 ‘꽁초픽’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상인과 주민이 앞장서 잘 관리하고 운영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향후 구에선 향후 꽁초픽에 대한 디자인 실용신안 등 관련 특허 취득을 추진하고 전 동으로 확대 실시할 계획이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이는 소통과 협치로 이뤄낸 진정한 주민자치의 결과물이다.”라며 “담배꽁초 수거함을 통해 확인된 구민의 의견은 향후 구정 운영에 반영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