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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화장실 불법촬영 공포에… “외출땐 물도 안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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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화장실 불법촬영 공포에… “외출땐 물도 안 마셔요”

입력
2019.12.02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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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32% “가장 두려운 범죄”… SNSㆍ인터넷 유포 땐 속수무책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 A(32)씨는 집 밖에 나가면 최대한 물을 마시지 않는다. 혹시 모를 공용화장실 내 불법촬영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A씨는 “어쩔 수 없이 화장실을 갈 때는 카메라가 있을 것 같은 구멍을 일일이 확인하지만 불법촬영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찜찜하고 무섭다”고 토로했다.

불법촬영은 A씨만의 걱정이 아니다. 경찰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여성들은 불법촬영을 성폭행ㆍ추행보다 더 두려운 범죄로 꼽았다.

1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간 서울에 거주하는 여성 3,8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32%가 여성 대상 범죄 중 불법촬영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답했다. 이어 성폭행ㆍ추행(29.1%), 주거침입(23.4%), 스토킹(15.3%)이 뒤를 이었다.

불법촬영을 비롯해 여성대상 범죄 방지를 위해 경찰에 가장 바라는 것은 시설확충(36.9%)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중점적으로 개선할 사항으로는 신속한 수사(35%)와 신속한 출동(29.4%)이 1, 2위에 올랐다. 여성들은 다양한 예방활동(20.1%)보다 사건이 터졌을 때 경찰의 신속한 대응을 보다 중요시 한다는 뜻이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 7월부터 서울경찰청이 시행한 ‘여성안전 종합치안대책’의 연장선에서 서울시내 31개 경찰서들이 자체적으로 관내에 거주하는 여성 최소 1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지역별 특성에 따라 질문 내용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서울경찰청이 범죄별 불안도 등 공통된 문항을 추려 분석한 결과는 현실의 범죄 발생 건수와 별 상관이 없었다.

[저작권 한국일보] 올해 8월 서울 여성 3893명 설문 -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올해 8월 서울 여성 3893명 설문 - 송정근 기자

경찰청에 따르면 연간 발생 건수만 놓고 보면 성폭행이나 강제추행이 불법촬영보다 4배 가량 더 많다. 지난해 강간ㆍ강제추행은 2만3,478건 발생한 반면, 불법촬영을 처벌하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 이용 촬영) 위반은 5,925건이었다. 카메라 등 이용 촬영은 2017년 6,465건에서 지난해 8% 정도 감소했지만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통계’ 속 숫자를 뛰어 넘은 셈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찍힐 수 있다는 불안감과 한번 유포되면 걷잡을 수 없이 피해가 확산된다는 게 불법촬영 공포의 근원이다. 대학생 B(23)씨는 “불법촬영으로 시작되는 ‘디지털 성폭행’은 안전지대가 없고 퍼지는 속도가 빠른데다 영구적으로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공포스럽다”고 말했다.

여성이 느끼는 불법촬영 공포에 비해 처벌 수위는 여전히 낮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2011~16년 불법촬영으로 기소된 사건 1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1,866건 중 징역형이 선고된 건 5%에 그쳤다. 최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가수 구하라씨를 불법촬영물 유포로 협박한 전 남자친구도 1심에서 불법촬영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받았다. 구씨가 촬영을 제지하지 않아 몰래 촬영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부대표는 “불법촬영은 일상이 범죄에 노출되는 공포를 주지만 남성은 일반적인 성폭력보다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경찰 검찰 국회 등에 불법촬영의 폭력을 공감 못하는 중년남성이 많으니 제도 개선과 처벌 강화를 외치는 게 허무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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