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높으신 양반과 친분 없으면…" 유서 3장으로 폭로한 마사회 비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높으신 양반과 친분 없으면…" 유서 3장으로 폭로한 마사회 비리

입력
2019.11.29 17:24
수정
2019.11.29 18:30
9면
0 0

마사회 경마 기수 유서 남기고 숨진 채 발견

부정 경마, 조교사 비리, 마방 배정 불공정 등 적어

경찰 극단적 선택 가능성 두고 수사 진행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국마사회 소속 경마 기수가 부정 경마와 조교사 부정행위, 마사회의 마방(馬房) 배정 비리 등에 대한 비난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29일 부산 강서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20분쯤 부산 강서구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렛츠런파크) 소속 기수 A(40)씨는 새벽 산책에 나섰던 동료 기수에게 숙소 화장실에서 발견됐을 당시 숨을 거둔 상태였다. A씨를 발견한 동료 기수는 즉각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선 일단 A씨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유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교적 구체적으로 작성된 유서를 감안할 때 극단적인 선택 가능성이 높단 분석이다.

화장실 입구 쪽에서 발견된 A4 용지 3장의 유서는 부정 경마를 비롯해 조교사 비리 등 마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으로 채워졌다. 유서 마지막 장에선 "이거(유서) 내가 쓴 것이 맞다, 혹시 프린트했거나 조작됐다고 할까 봐(자필 기록을 남긴다)"는 내용까지 적혀 있다.

컴퓨터(PC)로 작성한 나머지 문서에선 조교사가 기수에게 부당한 지시를 하는 내용과 조교사의 비리, 마방 배정의 불공정 등을 전했다. 현행 ‘개인마주제’는 개인마주가 조교사에게 말을 위탁하고 조교사가 개인사업자로서 기수와 마필관리사를 고용하는 구조다.

유서에선 “기수라는 직업은 한계가 있었다. 모든 조교사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조교사들의 부당한 지시에 놀아나야만 했다”고 폭로했다. 유서에 따르면 조교사들은 승부조작에 기수를 강제 동원했다. 예컨대 조교사들은 뛰어난 기량의 말에 오른 기수에게 고의적으로 속도 저하를 지시하고 배당금 조작에 가담했다. 만약 이를 거부할 경우엔, 조교사들은 기수에게 말을 탈 기회조차 주지 않거나 부상 가능성이 높은 말을 타도록 압박했다.

참다 못한 A씨는 7년 전, 영국에서 숱한 고생 끝에 자비로 조교사 먼허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핵심인 마방(馬房)을 받지 못했다. 마방은 말이 머무는 공간이다. 유서에는 “하루 빨리 조교사를 해야겠단 생각으로 죽기 살기로 준비해 조교사 면허를 받았다. 그럼 뭐하나. 마방을 못 받으면 다 헛일인데”라며 “면허 딴 지 7년이 된 사람도 못 받는 마방을 갓 면허 딴 사람이 먼저 받는 더러운 경우가 있다, 높으신 양반과 친분이 없으면 안 된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적혀 있다. 마방은 마사회에서 조교사에게 배정한다.

양정찬 부산경마공원 말 관리사 노조 지부장은 "어려움 속에서도 밝게 생활하려고 노력했던 기수인데 이렇게 가다니 안타깝다”면서 “마사회가 경기 운영과 마방 배정 등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지 않으면 이 같은 안타까운 일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고 꼬집했다.

말 관리사 노조에 따르면 2006년 문을 연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지금까지 모두 4명의 기수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올해 7월에는 베테랑 기수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지만, 유서에선 개인적인 문제만 언급됐다. 지난 2017년엔 말 관리사 2명이 잇따라 세상을 등졌다. 한국마사회, 개인마주, 조교사, 기수ㆍ마필관리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고용구조에선 말단인 기수와 마필관리사들이 착취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게 노조측 판단이다.

이에 대해 한국마사회 측은 “이런 사고가 생긴 거는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유서에 있다는 내용 중에는 사실무근이거나 조사를 해봐야 할 문제들이 있다”면서 “마사회는 면허만 주는 곳이지 채용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채용 비리가 있을 수 없고, 고위직과의 친분으로 마방을 받았다는 내용 등에 대해선 내부적으로 감사를 진행 중이어서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부산=권경훈 기자, 성환희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