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나 특별한 냄새 등 우리를 옛 시절로 잠시 돌려놓는 매개체들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은 역시 많은 정보값을 가진 시각 이미지다. 특히 사진은 때로 천 마디 글줄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컨대 90년대 서울 시민의 삶이 어땠는지를 돌이켜보려면 ‘90년대 서울 풍경’을 검색하면 된다. 그러면 거리와 건물의 모습들, 무수히 많은 간판들, 이십여 년 전에 타고 다니던 차량의 모습들을 통해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바로 깨달을 수 있다.
풍경을 가로지르는 인물들은 거리사진의 중요한 볼거리다. 90년대 남성들은 옆머리를 짧게 깎았고 넥타이를 넓게 메었으며 바지를 배꼽까지 끌어올려 입고 다녔다. 여성들은 눈썹을 가느다랗게 그렸고 입술을 두껍고 짙은 색으로 칠했다. 모두들 어쩐지 지금보다 얼굴에 웃음기가 많았던 것 같다. 거리 풍경을 시대의 기록으로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캔디드다. 캔디드 사진은 인위적인 설정 없이 보이는 그대로를 프레임에 넣는다. 피사체 인물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아야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전에 촬영 여부를 알지 못하면 자기 초상의 권리를 침해받지는 않을까? 세계적으로 사진 촬영에 관한 초상인격권 모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대부분의 서양 국가들이 그러하듯, 촬영자가 다른 사람을 동의 없이 촬영하고 동의 없이 게재할 수 있는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은 그대로 촬영하고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는 카메라 렌즈가 사람 눈의 확장일 뿐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다만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드러내는 모습들, 즉 피사체가 화장실이나 욕실, 침실 등에 있거나 처참한 사고를 당한 모습 등을 촬영해선 안 된다. 물론 성폭력 등 범죄를 동반하는 촬영은 강한 처벌을 받는다.
예외로 독일 정도가 공공장소에서 촬영한 사진이라도 게재와 사용에 제한을 두었다. 비스마르크의 사망 사진으로 윤리적 갈등을 겪은 후 1907년 개정된 예술저작권법이 타인의 초상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는 이탈리아에서 5년 전까지 허가 없는 문화재 촬영이 불법이었던 것처럼(그렇다, 유명 관광지에서 찍는 사진도 원칙적으로는 불법이었다) 사실상 사문화된 법 조항으로 여겨졌으나, 2013년 아스펜 아이회퍼라는 거리사진가가 자신이 촬영한 사람으로부터 피소를 당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그 사진가가 작년 최종 승소함에 따라 독일의 법률 환경도 달라질 전망이다.
한편 서양과 극단적으로 다른 초상인격권 모델을 일부 중동 국가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슬람교는 우상숭배를 막기 위해 사람이나 생물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일을 금해 왔는데, 율법을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나라들은 현대의 사진 촬영도 그와 같은 행위로 본다. 그리하여 촬영자는 사전에 정부 또는 위탁기관, 예를 들어 사우디에서는 문화부, 카타르에서는 뉴스 에이전시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정부 허가를 받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동의 없이 촬영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 타인의 사진을 온라인에 퍼 나르거나 심지어 태그하는 일도 동의를 받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 나라들의 자연스러운 거리 풍경은 사진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사진 촬영에 관한 초상인격권 규정이 없으며, 따라서 처벌 규정도 없다.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모르는 사람을 찍는 일이 상당히 결례이며 때로는 만인의 지탄을 받기도 한다. 법률과 문화의 이러한 간극은 종종 촬영자와 피촬영자 모두를 혼란스럽게 한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기록하면서도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소설가이자 기록사진가인 조세희 선생이 소년 시절의 나를 찍어간 적이 있었다. 그는 촬영 후 나에게 다가와 다정한 어조로 촬영 사실을 알렸다. 나는 지금도 그 일을 내 인생의 기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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