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신입 사원으로 출발해 LG전자 최고경영자(CEO) 자리까지 오른 조성진(63) 부회장이 물러난다. 후임은 LG전자 양대 축인 TV와 스마트폰 사업을 총괄하는 권봉석(56) 사장으로 결정됐다. 지난 9월 LG디스플레이 수장을 교체한 데 이어 LG전자 CEO도 바뀌면서 취임 2년차에 접어든 구광모 LG 회장의 ‘뉴 LG’ 구현 작업이 본격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LG는 계열사별 이사회를 통해 권봉석 사장을 LG전자 새 CEO로 선임하는 등 2020년 임원인사를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LG전자의 새 사업본부장에는 박형세(53) 홈엔터테인먼트(HE)사업본부장, 이연모(57)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사업본부장, 이상규(58) 한국영업본부장이 선임됐다. 저성장 기조 속에서 50대 CEO를 전진 배치해 디지털 전환 등에 따르게 대응하겠다는 인적 쇄신이 키워드다.
‘미래 준비’로 요약되는 이번 인사에서 조 부회장은 LG전자에서 보낸 43년 2개월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게 됐다. LG그룹 최초의 고졸 출신 부회장인 그는 용산공고 졸업 후 1976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 입사해 2007년 세탁기사업부장(부사장), 2013년 홈어플라이언스(HA)사업본부장(사장) 등을 거쳐 2016년 말 CEO가 됐다. LG 가전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 ‘가전장인’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 그의 행보는 유별난 세탁기 사랑에서 시작됐다.
조 부회장 입사 당시에는 선풍기가 가장 유망한 가전제품이었지만 그는 보급률이 0.1%도 안됐던 세탁기를 택했다. 그는 창원공장 2층에 침대와 주방까지 만들어 둘 정도로 세탁기 기술 개발을 위한 밤샘 작업에 몰두했다. 1998년 세탁기용 다이렉트 드라이브(DD) 모터 개발에 성공, 일본에 의존하던 기술 종속을 끊었다. 통돌이와 드럼세탁기를 결합한 혁신 제품 ‘트윈워시’도 조 부회장의 작품이다.
HA본부장 시절 사장실을 마룻바닥으로 바꿔 청소기를 직접 테스트하고, CEO 취임 후엔 스마트폰 연구를 위해 제품 수십 대를 갖다 놓고 공부하던 그의 모습은 LG 임직원들 사이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LG전자의 신임 CEO가 되는 권봉석 사장은 기술과 마케팅을 겸비하고 현장 감각까지 갖춘 ‘융합형 전략가’로 통한다. 1987년 LG전자에 입사해 전략, 상품기획, 연구개발, 영업, 생산 등 사업 전반을 두루 경험했다. 2014년부터 TV 사업을 담당하는 HE사업본부장(사장)으로 일하며, 올레드 TV 출시, 롤러블(돌돌 말리는) TV 개발 등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초부터는 ‘LG폰의 부활’ 임무를 맡고 스마트폰 사업인 MC사업본부장(사장)도 겸임했다.
권 사장은 빅데이터, AI, 콘텐츠 등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역량을 갖추고 있어 LG전자의 디지털 전환 최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성을 갖춘 젊은 인재 중심의 세대 교체 바람은 계열사에도 불었다. 유일한 사장 승진자인 황현식(57) LG유플러스 사장은 5G 상용화 성과로 승진했으며, LG그룹 전체 신규 임원 승진자 106명 중 21명은 45세 이하다. LG하우시스는 새 CEO에 강계웅(56) 부사장을 선임했다.
특히 LG생활건강은 30대 여성 임원을 발탁하는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헤어&바디케어 마케팅부문장을 맡은 심미진(34) 상무는 역대 최연소 LG 여성 임원이 됐고 오휘마케팅부문장 임이란(38) 상무도 승진자에 이름을 올렸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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