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키워본 적 없어 그런지 길거리에서 만나는 강아지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강아지를 만지기는커녕 조금 무서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를 읽으니 강아지를 쓰다듬는 따듯한 손과 그에 반응하는 강아지의 머리와 등허리가 눈앞에 선하다.

사랑은 쓰다듬는다. 천천히, 가만히, 조용히, 손바닥 살갗에 온 마음을 담아 다른 살갗에 전한다. 마음이 살갗에 담길 수 있을까 싶고, 내 키보다 높은 마음이 작은 두 손바닥에 온전히 담기지 않을 듯하지만 다른 살갗이 그 마음을 오롯이 받아 안는 기적 같은 때도 있다. 서로 다른 두 존재의 살갗을 통해 전해지는 마음. 그게 사랑이고, 사랑의 기적이다.

사랑은 몸을 낮춘다. 쓰다듬는 손에는 몸이 낮아진다. 공작처럼 화려한 날개를 펴지 않아도 코뿔새처럼 괙괙, 초원을 울리는 큰 목소리로 울지 않아도 내 존재가 있는 그대로 충분히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일부러 뽐내거나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다. 천천히, 가만히, 조용히 쓰다듬는 손에 몸을 맡기고 나른한 낮잠 같은 시간을 충만히 누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쓰다듬는 손 대신 밀치고 때리는 손을 만나기도 한다. 쓰다듬는 손에는 몸을 낮추는 게 사랑이었지만 밀치고 때리는 손에 몸을 낮추는 건 굴종이다. 밀치고 때리는 손에는 몸을 곧추 세우고 응전 태세로 맞서 싸워야 한다. 설령 그 손이 예전에는 한없이 유일한 손길로 나를 쓰다듬던 손이었다 해도.

남성 폭력과 가부장제 폭력으로 죽은 여성들의 소식을 매일같이 듣는다. 아름답고 자유롭던 그들의 몸이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날마다 그들을 밀치고 때렸던 손들을 막아내지 못한 죄책감, 나도 언제든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분노를 이 땅의 여성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건 얼마나 무거운 일인가.

앞으로 여성들은 서로를 쓰다듬으며, 밀치고 때리는 손을 막아낼 것이다. 아름답고 자유로운 몸들이 더 이상 이 세상을 날아오르지 않아도 되도록, 몸을 낮추고 낮추어도 흰 눈밭의 배꽃으로 환하도록, 서로를 구할 것이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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