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의 ‘창의공작관’이라는 건물 이름이 ‘AZIT 메이커스페이스’로 바뀌었다. ‘창의공작관’을 붙인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한자어 이름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젊은 학생들의 감각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인지 로마자 표기와 영어를 섞어 새 이름을 지어 붙인 것이다.
‘AZIT’로 적은 ‘아지트’는 ‘선동본부’를 뜻하는 러시아어 ‘агитпу́нкт(아깃푼트, agitpunkt)’에 바탕을 둔 말이다. ‘비합법 운동가나 조직적 범죄자의 은신처’ 뜻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어떤 사람들이 자주 어울려 모이는 장소’의 뜻으로 폭넓게 쓰인다. 결국 ‘AZIT 메이커스페이스’는 뭔가 만들기 위해 학생들이 자주 어울려 모이는 장소의 뜻이 된다. 외국어와 외래어가 뒤섞인, 참으로 어렵고 거창한 이름이다.
대학이 입학 자원 감소로 재정 압박에 시달리고, 극한 생존 경쟁에 내몰리면서 이러한 외래어, 외국어 남용이 일상화되었다. 쉬운 한국어를 쓰는 대신 사업, 건물, 학과 이름에 온갖 외국어를 갖다 붙인다. ‘에이스 사업’으로 만든 학생 지원 부서 이름이 ‘All in Care 아카데믹 코칭 센터’인 식이다. 대학의 이러한 외래어, 외국어 남용의 배경은 교육부인데, ‘학부교육 선도대학’이라는 쉬운 말을 두고도 ‘에이스(ACE, Advancement of College Education)’를 더 자주 쓴다.
한국어와 한글을 부족함 없이 쉽고 효과적으로 쓸 수 있음에도 외래어를 남용하고 외국어를 숭배하는 비주체적, 비교육적 태도는 교육기관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외국어를 섞어 그럴듯한 겉치레 표현으로 눈길을 끌려고 할 것이 아니라 행사나 사업의 질적 충실도를 높이는 것이 학생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정복 대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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