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도웍스 심재신 대표
“자, 어깨가 이 파란선과 일직선이 됐을 때 멈춘 다음 회전하면 돼.”
“이 턱 높이가 3cm 정도 되거든? 이런 턱을 올라갈 때는 반드시 뒤로 가는 거야.”
지난 21일 경기 시흥시에 있는 ‘토도웍스’ 사옥 내 휠체어 전용 교육장. 이곳에는 휠체어를 타고 각종 연습을 할 수 있는 코스가 마련돼 있다. 토도웍스 직원 김강씨가 일곱 살 소녀에게 휠체어 조작법을 차근차근 알려주고 있었다. 토도웍스는 수동 휠체어용 전동 보조장치(파워 어시스트)인 ‘토도 드라이브’를 개발한 소셜 벤처다.
휠체어에는 전동 휠체어와 수동 휠체어가 있다. 수동 휠체어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가볍다. 접을 수 있어 차에도 실을 수 있다. 하지만 양팔로 바퀴를 굴려야만 앞으로 나간다. 전동 휠체어는 조이스틱으로 운전 할 수 있어 편하지만 비싸고 무겁다. 웬만한 차에는 들어가지 않고 부피가 커 대중교통 이용도 어렵다.
두 휠체어의 단점을 보완한 장치가 파워 어시스트다. 수동 휠체어에 파워 어시스트를 장착하면 전동 휠체어처럼 조작하며 이동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싼 파워 어시스트
심재신(43) 토도웍스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토도 드라이브를 개발했다. 2015년 여름 당시 초등학생이던 심 대표 딸의 친구가 집에 놀러왔다. 심 대표는 다리가 불편해 수동 휠체어를 타고 있던 딸 친구로부터 “수동 휠체어를 움직이는 게 힘들어 외출을 잘 안 한다”는 말을 들었다.
기업용 맞춤 정보기술(IT) 기기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던 심 대표는 수동 휠체어에 모터를 달면 아이가 쉽게 조종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즉석에서 “아저씨가 더 편한 휠체어를 만들어줄게”라고 약속을 했다. 그는 4개월 간의 연구 끝에 딸 친구의 수동 휠체어에 모터를 달아줬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며칠 뒤 회사로 계속 휠체어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슷한 환경에 있는 부모들이 딸 친구가 탄 휠체어를 보고 우리 아이에게도 만들어줄 수 있냐고 계속 연락을 하시더라고요. 그제야 제가 만든 게 뭔지 검색을 해보게 됐죠. 파워 어시스트란 명칭도 그 때 처음 알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사업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주변 조언에 심 대표는 2016년 토도웍스를 설립했다. 얼떨결에 만든 파워 어시스트에는 토도 드라이브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토도’는 스페인 말로 ‘모두’라는 뜻이다.
그 전까지 국내에 소개된 파워 어시스트는 모두 독일이나 일본산이었다. 가격은 600만~700만원으로 비쌌고 무게도 10kg이 넘었다. 그러나 토도 드라이브는 4.5kg로 훨씬 가볍고, 가격도 기존 제품의 3분의1도 안 되는 176만원이다. 심 대표는 제품 출시 전 고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200만원 이하여야 부담이 덜 하다는 응답을 보고 가격을 크게 낮췄다. 그는 “간단하면서 꼭 필요한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토도웍스 직원은 고객이 있는 곳으로 가서 토도 드라이브를 직접 설치해준다. 심 대표는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면 그들을 직접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출장 설치를 원칙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장애 아동 이동권 향상을 위해
토도웍스는 한 발 더 나아가 지난 해부터 SK그룹 등이 참여한 사회공헌 연합체인 행복얼라이언스, 상상인 그룹과 함께 장애 아동의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세잎클로버 플러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만 6~13세의 아동들에게 몸에 맞는 수동 휠체어와 토도 드라이브를 무료로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심 대표는 “아이들은 금방 자라기 때문에 성인이 될 때까지 4, 5번 휠체어를 교체해줘야 한다. 수동 휠체어 한 대 가격이 400만~500만원이라 비용 부담이 크다”며 “아이에게 일부러 큰 옷을 사줘 오래 입히듯 휠체어도 큰 걸로 사 주는 부모가 많다. 아이들이 몸에 안 맞는 휠체어를 타는 바람에 척추측만 등의 2차 장애를 입는다. 그래서 몸에 맞는 수동 휠체어를 함께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도 드라이브가 장착된 수동 휠체어가 나오면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전용 교육장으로 와 반드시 교육을 받아야 한다. 3~5회 교육 후 사용이 능숙해져야만 휠체어를 갖고 나갈 수 있다. 안전을 위한 일종의 ‘운전면허 시험’인 셈이다.
토도웍스는 휠체어를 타는 6~13세 아동이 국내에 2,0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세잎클로버 프로젝트를 통해 이 중 절반 가까운 1,000여명의 아이들이 혜택을 받았다.
심 대표에 따르면 토도 드라이브를 장착한 장애 아동들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산책할 수 있어서 좋다”, “혼자 편의점 가서 천천히 물건을 고를 수 있어서 좋다”, “가족들과 처음 여행을 갔다” 등 소박한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행복얼라이언스가 고려대에 의뢰한 ‘이동권 증진이 장애 아동의 삶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수동 휠체어에 파워 어시스트를 장착한 아이들의 이동거리는 평균 74.7% 상승했고, 우울증상은 31.6%에서 10.5%로 크게 줄었다. 이동권 증진이 아이들의 정신건강 향상에도 좋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심 대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던 아이가 스스로 움직이면 밝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한다. ‘도와줘야 하는 아이’에서 ‘함께 놀 수 있는 아이’가 되는 것”이라며 “자연스럽게 장애아동 주변의 아이들도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된다”고 강조했다.
토도 드라이브는 해외에서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세계 최대 장애인 용품 박람회인 독일 ‘레하케어’에 2016년부터 3년 연속 참가해 호평을 들었다. 심 대표는 “해외 바이어들이 우리 제품이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파워 어시스트’라고 인정해 줬다”고 말했다. 얼마 전 유럽의 의료기기 인증을 획득해 15개국과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서는 아직 의료기기 인증을 받지 못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을 받으려면 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국내에 휠체어 품목은 수동과 전동 밖에 없었기 때문. 시험을 보려 해도 시험 과목이 없었던 셈인데 최근에야 파워 어시스트에 대한 인증 품목이 마련됐다. 식약처 인증을 받으면 의료보험이 적용돼 소비자들이 더 싸게 토도 드라이버를 구매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심 대표는 내친김에 아동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 탈 수 있도록 크기 변환이 가능한 휠체어를 개발했다. 내년 초 상용화할 계획이다. 앞으로는 비싼 돈을 들여가며 4, 5번씩 휠체어를 교체할 필요가 없어질지 모른다. 그는 “약자들의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는 게 우리 기업의 일”이라며 미소 지었다.
윤태석기자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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