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차달건은 보시는 분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게 맞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승기가 내놓은 의외의 대답은 곧바로 신선한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지난 23일 종영한 SBS ‘배가본드’에서 그는 의문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조카를 잃고 기체결함이라는 진상조사단의 결과 발표 뒤에 가려진 ‘비행기 테러’의 진실을 쫓기 시작하는 주인공 차달건 역으로 선 굵은 연기를 펼쳤다.
극이 무르익으면서 이승기의 물오른 연기력 역시 빛을 발했고, 탄탄한 액션 연기에 감정 연기가 더해지며 ‘배가본드’의 중심을 묵직하게 이끄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극 초반, 일각에서는 이승기의 연기를 두고 ‘어색하다’는 뜻밖의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군 입대로 인한 공백기가 있긴 했지만 그동안 ‘찬란한 유산’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더 킹 투하츠’ ‘구가의 서’ 등 굵직한 작품들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입증해 왔던 그였기에, 연기력에 대한 갑작스러운 지적은 꽤나 당황스러운 반응이었다.
이 같은 이야기에 이승기는 “정말 다행인 것은 그래도 호평이 정말 많았다는 거였다”라며 “그나마 ‘한시름 놨다’ 싶었다”고 입을 열었다.
“차달건이라는 인물의 설정 상 초반에 소리를 많이 지르고 하다 보니, 작품이 출발할 때부터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이었어요. ‘리얼리티로 갈까, 맞춤형 연기로 갈까’ 하는 부분을 고민했었는데, 리얼리티로 가는 걸 선택했죠. 인물이 가진 분노의 깊이를 가져가는 게 더 진정성 있게 연기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저희 작품이 2시간짜리 영화였다면 보시는 분들도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여 주셨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16부작 드라마로 보시게 되니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차달건은 보는 이들이 불편한 게 맞는 것 같아요. 정상적인 사고나 인내, 사회의 룰에 따라서 움직일 수 없는 인물이잖아요. 미친 듯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텐션을 더 높여서 강하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불편한 인물이라는 설정으로 연기했죠. 물론 디테일에서는 다음 작품에서 스스로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할 점들은 고쳐야 할 것 같아요.”
인물이 놓인 상황의 특수성 때문에 보는 이들이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다는 차달건에 대한 이승기의 해석은 ‘배가본드’를 보는 내내 가슴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묘한 이질감의 이유를 명확하게 납득시켰다.
이는 곧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그의 치열한 고민과 끊임없는 생각의 시간을 증명했다.
“익숙지 않은 목소리를 낼 때 변화가 오잖아요. 그게 불편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고요. ‘나라면 이런 목소리를 끈질기게 낼 수 있을까. 타협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골인 지점이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무작정 달리라고 하면 지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사회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는 꼭 있어야 되는 인물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이승기가 가장 크게 얻은 수확은 ‘액션배우’의 이미지라고 했다. 그는 고된 액션 촬영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면서도 이 같은 수확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내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액션배우 이미지가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이미지인 것 같아요. ‘이승기만의 액션이 있네?’ 하는 것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란 부분에 대해서는 처음엔 저도 의심이 있었거든요. 제가 특출 나게 무술을 잘하는 것은 아닌데, 훌륭한 연출에 의해 배가되면서 잘 나온 것 같아요. 하하. 액션신 촬영 소감이요? 죽는 줄 알았어요. 살이 많이 빠진 건 아닌데, 계속 달리고 쪼그려 앉아서 뛰고 그러다 보니 피로감이 있더라고요. 다만 그것들을 극복하고 나니 좋은 액션신이 결과물로 따라왔죠. 웬만해서는 계속 제가 모든 액션을 소화하려고 하다 보니 긴장감 넘치는 액션신을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더불어 이승기는 ‘구가의 서’ 이후 6년 만에 같은 작품에서 재회한 수지와의 호흡이 이 같은 양질의 액션 연기에 큰 도움이 됐다고도 덧붙이며 수지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액션이다 보니까 신체를 이용해야 하는 장면도 많고, 터치를 해야 하는 장면도 많아서 배우들끼리 친하지 않으면 촬영이 어려운 신들도 많아요. 그런데 수지 씨 같은 경우는 워낙 편한 사이다 보니, 촬영을 하면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합을 맞추기 위한 다양한 시도도 많이 하면서 굉장히 편하게 촬영을 할 수 있었어요. 너무 고맙고 좋았죠.”
한편, 이승기가 주연을 맡아 활약한 ‘배가본드’는 지난 23일 최종회 시청률 13%를 기록하며 종영했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