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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조국 이후’ 냉소에 빠진 기자들에게

입력
2019.11.27 19:00
수정
2019.11.27 19: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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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투해서 성취한 만큼만 나갈 수 있다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따끔한 질문부터

낡은 관행 바꾸고 열린 뉴스룸 만들어야

올해 조국 사태를 거치며 언론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졌지만, 현장 기자의 치열한 문제의식이 빚어낸 탁월한 기획도 적지 않았다. 사진은 한국일보 기획 '지옥고 아래 쪽방' 인터랙티브 화면.
올해 조국 사태를 거치며 언론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졌지만, 현장 기자의 치열한 문제의식이 빚어낸 탁월한 기획도 적지 않았다. 사진은 한국일보 기획 '지옥고 아래 쪽방' 인터랙티브 화면.

10년 전 대학원 저널리즘 수업에서 ‘기사란 무엇인가’를 놓고 토론한 일이 있다. 교수님이 나눠준 자료에 빼곡히 적힌 언론학자들의 다양한 정의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기자가 쓰는 것이다.” 헐, 이 무슨 말장난인가. 그럴싸한 정의들이 많았을 텐데, 이상하게도 이 불완전한 언명이 화두처럼 뇌리에 박혔다. 그럼 기자는 뭔데? 무엇을 쓰지? 어떻게 써야 해? 학술적 정의로도, 실행의 나침반으로 삼기에도 너무나 불친절해서 계속 질문을 던지고 답할 수밖에 없던 묘한 경험. 멱살 잡혀 끌려가듯 어설픈 자문자답을 되풀이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기자가’라는 주어의 힘이다. 요컨대 저널리즘은 기자들 스스로 분투해서 성취한 딱 그만큼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경향신문의 기획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 1월부터 올 9월까지 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1,200명의 이름으로 채운 1면에선 “퍽, 퍽, 퍽… 노동자의 몸이 터지고 부서지는 소리”(소설가 김훈)가 생생히 들리는 듯했다. 인터랙티브로 구현한 디지털 기사까지 찾아보다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디지털 스토리텔링 실험을 꾸준히 시도해 온 황경상 기자. 몇 달 전 토론회에서 봤을 땐 “이것저것 해 봤지만 별 소득도 없고 (조직에) 큰 변화도 없다”고 낙담한 듯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던 그가 더없이 고마웠다.

한국일보의 ‘지옥고 아래 쪽방촌’ ‘대학가 신쪽방촌’ 2부작도 올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이 기사로 ‘데이터 기반 탐사보도 상’ 등을 받은 이혜미 기자는 최근 데이터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현장’과 ‘데이터’ 중 하나만 갖고는 안 되죠. 현장은 실마리를 제공하고, 데이터는 이를 증명합니다. 현장에서 건져 올린 단서를 데이터로 구현할 수 있는 기자의 문제의식이 중요합니다.” 내가 말로만 떠들던 ‘주어의 힘’을 그는 현장에서 몸으로 보여줬다.

위기에 빠진 언론에 당장 필요한 것이 ‘개혁’인지 ‘혁신’인지 ‘변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던 대로 신문 만들고, 포털의 가두리 횡포를 비판하면서도 트래픽에만 목 매는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영영 길을 잃고 말 것이다. 개혁이든 혁신이든 그 시작은 이들처럼 현장에서 ‘주어의 힘’을 실천하려는 기자들이 더 많아지는 것, 이런 기자들이 현장에서 길어 올린 단서를 붙들고 더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바꾸어 말하면, 언론이 20년째 위기를 겪으면서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이런 기자들이 열정을 잃고 울면서 떠나게 만드는 언론계 현실이 아닐까. 비전을 묻는 기자들에게 “비전은 나중에 찾고 일단 트래픽이나 올려라”고 말하고, ‘먹고사니즘’에 매몰돼 질문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현실 말이다.

조국 사태 이후 언론은 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 가장 위험한 건 현장의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 절망을 넘어 지독한 냉소가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비평가 레베카 솔닛은 냉소주의의 폐해로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경향을 꼽는다. “단순화가 무언가를 그 본질로만 압축하는 일이라면, 지나친 단순화는 그 본질까지 내던지는 일이다.” 조국 사태를 돌아보자. 진영 논리에 빠져 ‘기레기’란 힐난과 저주를 퍼붓는 이들도 문제지만, 언론의 낡은 취재보도 관행 역시 되짚어봐야 한다. 무엇이 더 중한가 따지는 건 부질없다. 아프고 괴롭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부터 따끔하게 던지고 답을 찾아야 한다. “기자는 다른 사람을 취재할 때 적용하는 가치들을 기자의 삶과 일에도 똑같이 적용할 의무가 있다.”(‘저널리즘의 기본원칙’)

그러려면 편집국이 더 소란스러워야 한다. 진실 추구, 사실 확인, 정파적 독립 등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달성하는 데 가장 필요한 ‘열린 뉴스룸’을 위해. “사람들이 서로의 주장, 인식, 편견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열린 분위기가 없으면, 모든 노력은 비좁은 방안에서 질식하게 된다.”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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