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출판사’ 워크룸프레스, 출판계에 ‘제안’과 ‘입장’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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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출판사’ 워크룸프레스, 출판계에 ‘제안’과 ‘입장’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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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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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강한 디자인 앞세워 ‘숨은 책들’ 발굴… 100종 출간 맞아

워크룸프레스 민구홍 편집자(왼쪽부터)와 박활성 편집장, 김뉘연 편집자를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워크룸프레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형기 인턴기자

한눈에 봐서는 도무지 어떤 책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표지에는 제목 대신 감각적인 사진 혹은 아트워크만 자리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그림도 허용하지 않은 채 흰 바탕 위에 큼지막한 검은 글자만 박힌 표지도 있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싶은 이 책들은 모두 작지만 강한 출판사 워크룸프레스의 작품이다. 한 권만 놓고 볼 때는 갑자기 튀어나온 별종 같지만, 워크룸프레스의 모든 책을 모아놓고 보면 비로소 이 출판사의 정체성이 그려진다.

워크룸프레스는 저자와 책 출간 계약을 할 때도 “아무튼 예쁘게는 만들어 줄 수 있다”며 설득할 정도로 디자인에 강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지녔다. 실험성이 강한 책들을 내며 출판계의 주목을 받더니 출판시장의 불황 고착화를 뚫고 최근 100번째 책을 냈다. 개성을 유지하며 출판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준 워크룸프레스의 편집자들을 8일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워크룸프레스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동기이자 디자인 전문 콘텐츠 회사 안그라픽스 출신의 디자이너 김형진과 편집자 박활성이 2006년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디자인 스튜디오 워크룸으로 출발한 초기에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도록 디자인을 맡으며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그래픽 디자인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책 디자인으로 발을 넓히면서 여러 출판사들의 감각적인 책 디자인을 도맡았다. 자음과모음의 인문학 시리즈 ‘하이브리드 총서’ 등이 당시 워크룸의 작품이다. 2011년 워크룸 안에 출판사 워크룸프레스를 두면서, 직접 독창적인 책을 기획하고 출판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박활성 편집장을 중심으로 김뉘연 편집자, 민구홍 편집자 셋이 워크룸프레스의 책을 만들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워크룸프레스의 인문학총서 ‘제안들’ 시리즈. 책 표지의 절반을 덮는 큼지막한 띠지에 SM견출명조로 적은 제목과 저자 이름은, 그 자체로 디자인이 되었다. 박형기 인턴기자

워크룸프레스가 디자인 관계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눈도장을 찍은 계기는 숨은 문학 작품들에 주목한다는 취지로 기획한 ‘워크룸 문학총서 제안들’이었다. 제1권 프란츠 카프카의 ‘꿈’(2014)을 시작으로 최근 출간된 알프레드 자리의 ‘파타피지크학자 포스트롤 박사의 행적과 사상: 신과학소설’까지 17권을 발행해 ‘총서’로서의 위엄을 쌓아가고 있다. 저자의 이름도 책의 제목도 온통 생소한 이 총서 기획은 김뉘연 편집자의 작품이다.

“당시만 해도 번역가들이 수동적으로 출판사에서 책을 제안 받아 번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만 경쟁적으로 번역 출간됐죠. 아무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번역가 본인이 번역하고 싶은 책을 고르게 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배수아 작가에게 제안을 했고, 카프카의 ‘꿈’을 추천해서 지금까지 오게 됐죠.”(김뉘연)

[저작권 한국일보] 워크룸 프레스의 다양한 책들. 위쪽은 한국 문학 시리즈인 ‘입장들’ 총서, 아래는 왼쪽부터 곽재식 작가의 ‘한국괴물백과’,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을 기념해 엮은 단편소설집 ‘광장’, 인문학 총서 ‘제안들’ 시리즈의 1권인 프란츠 카프카의 ‘꿈’. 박형기 인턴기자

‘제안들’ 총서로 팬층을 확보한 워크룸프레스는, 2017년부터 기획 출간 중인 ‘입장들’ 시리즈를 통해 문학 팬덤을 한층 공고히 하고 있다. 이상우 작가의 ‘warp’을 시작으로 정영문 작가의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 정지돈 작가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배수아 작가의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까지 4권의 소설을 냈다. 참여 작가들의 면면만 보아도, 워크룸프레스의 지향점을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우리도 한국문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렇다면 ‘제안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미 많은 한국문학이 있는데 굳이 우리까지 일반적인 한국 문학을 낼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죠.”(박활성)

워크룸프레스는 올해 경사가 이어졌다. 곽재식 작가의 ‘한국괴물백과’가 시장에서 예상보다 선전했고, 얼마 전 출간 종수 100호를 돌파했다. 수많은 소규모 출판사가 생겨났다 사라지는 출판계 현실에서 ‘100종 출간’의 의미는 남다르다. 도서 고유번호인 ISBN 코드는 10개, 100개, 1000개 단위로 주어진다. 10권을 낸 출판사는 100권도, 100권을 낸 출판사는 1000권도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저작권 한국일보]출판사가 알려지면서 각종 제안이나 투고가 늘었다. 박활성 편집장은 “그럼에도 워크룸만의 색깔을 지켜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박형기 인턴기자

문학은 돈이 안 된다는데, 도대체 몇 명이나 읽을까 싶은 책을 꿋꿋하게 내는 이유를 물었더니 도리어 “그런데 정말 문학이 돈이 안 되나요?”라는 반문이 나왔다. “미술이랑 디자인은 돈이 정말 정말 안돼요. 문학을 시작할 땐, 오히려 우리도 돈을 한번 벌어보자는 마음이었어요.(웃음) 중쇄가 힘들기는 해요. 그래도 100권을 돌파하면서 누적 매출이 가능해졌어요. 책을 많이 내고 성장해 나가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출판의 외연을 넓히는 데 일조하는 출판사가 되면 어떨까 싶어요.”(박활성)

[저작권 한국일보] 워크룸프레스가 출판한 책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워크룸프레스 사무실 선반 위에 놓여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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