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국제기념일을 지정해 운용하고 있다. 유엔총회에서 지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경제사회이사회, 유니세프, 유네스코, 세계보건기구, 식량농업기구, 유엔환경계획, 국제해사기구 등이 정한 날을 유엔 기념일로 받아들인 경우도 적지 않다. 모두 165개에 이르는 기념일은 1월 4일 ‘세계 점자의 날’로 시작해 연중 평균 이틀에 한번 꼴로 이어진다.
□ 유엔 기념일은 주로 평화와 안전보장, 차별 철폐 등 인권 보호와 인도주의, 환경보호, 보건 문제 와 관련된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유엔 6대 공용어별로 지정한 프랑스어, 중국어,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의 날이 대표적이다. 유네스코가 앞장선 재즈의 날, TV의 날도 이색적이다. 국가와 문화를 초월해 평화와 자유를 노래하는 재즈의 정신을 높게 평가해서, TV를 지식 소통의 장으로 자리매김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정한 날들이다. 개인 이름이 들어간 것으로는 인권과 사회정의의 가치를 기리기 위한 만델라의 날이 유일하다. 위생 문제로 인한 질병을 줄이고자 정한 세계 화장실의 날도 눈에 띈다.
□ 우리 정부 제안으로 유엔총회 제2위원회가 26일 ‘푸른 하늘을 위한 세계 청정 대기의 날’(9월 7일)을 채택했다. 기존 삼림의 날, 물의 날, 해양의 날, 토양의 날, 산악의 날 등에 이어 자연환경 보전과 관련된 유엔 기념일 대열에 새 이름이 추가된 것이다. 산업화와 함께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대기오염에 대처하려는 첫 유엔 기념일로, 우리 정부가 제안해 채택된 최초의 기념일이라는 의미가 있다.
□ 날짜에 특별한 뜻이 담긴 건 아니다. 우리 정부는 애초 겨울로 접어들면서 한반도 주변 공기질이 나빠지기 시작하는 11월 15일쯤을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22개 공동 제안국과의 논의 과정에서 오염이 심한 날보다는 맑은 하늘을 보며 공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9월쯤으로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안이 나와 그달 중 다른 기념일과 겹치지 않는 7일로 정했다고 한다. 최근 한중일 환경 당국이 10년 논의 끝에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물질 공동보고서를 내는 등 관련 국제협력도 진전을 보이고 있다. 기념일 제정에만 그치지 말고 청정 대기를 회복하려는 이 같은 국제적인 노력을 우리 정부가 선도해주기 바란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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