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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남 호남오페라단장 “오페라 불모지 전북서 33년간 열정 쏟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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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남 호남오페라단장 “오페라 불모지 전북서 33년간 열정 쏟았죠”

입력
2019.11.27 13:31
수정
2019.11.27 22:31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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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남 호남오페라단장.
조장남 호남오페라단장.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50년, 100년의 역사를 잇고 싶습니다.” 오페라 불모지였던 전북에서 33년간 호남오페라단을 운영해온 조장남 단장은 칠순의 나이에도 오페라에 대한 애정과 열정만큼은 크다. 지금도 국내뿐 아니라 그가 공부한 이탈리아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8일 세계적인 지휘자 로렌쪼 카스트리오타 추천으로 이탈리아 북부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열리는 제14회 카푸칠리 국제 성악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출국한다. 국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조 단장이 이탈리아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로렌쪼 카스트리오타는 조 단장과의 인연으로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전주에서 열린 호남오페라단 정기공연 지휘를 맡기도 했다.

출국을 앞두고 27일 가진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조 단장은 “서울에서도 문예회관과 문화예술위원회가 인정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며 “열정을 쏟아 온 오페라단의 명맥이 오랜 기간 유지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에서 바리톤을 전공한 성악가 출신이지만 오페라단을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사명감 때문에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자신을 포기했다. 대학 졸업 후 이탈리아로 유학해 오페라 연출 등을 공부하고 귀국한 뒤 군산대 교수로 부임하자마자 호남오페라단을 창단했다. 그때가 1986년이었다. 그는 “당시는 한국에 문화예술의 풍토가 제대로 자리 잡기도 전이었다”며 “이후 창작 오페라를 통해 전국 각지를 찾아 다니며 전북을 알려 왔다”고 회고했다.

그는 매년 각종 연주회와 신인 발굴, 음악 예술을 통한 청소년 선도를 위한 순회연주회도 열고 있다. 그랜드 오페라(2,000석)와 소극장 오페라(500석) 등 100여 차례 이상 공연했고, 지역을 소재로 한 10편의 오페라를 창작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8차례 우수 창작 오페라로 선정되는 족적을 남겼다. 조 단장은 “33년 동안 내 모든 시간과 열정이 고스란히 오페라단에 들어갔다”며 “지금까지 열린 공연은 지방 오페라단에게 결코 작은 게 아니다”고 했다.

오페라단을 운영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 종합예술무대인 오페라 한 편을 제작하는 데 소요되는 예산 규모를 감안하면 그 동안 쌓아온 업적은 기적에 가깝다는 평을 받고 있다. 매년 제작비 3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며 후원을 받지만 3,000~5,000만원씩 누적된 적자는 모두 그가 갚아야 할 몫이다.

조 단장은 “국악의 고장 전북에서 서양 음악을 뿌리내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페라를 이해시키고 경험하게 하면서 조금씩 저변을 확대해 나갔다”며 “열악한 환경에서 종합예술을 공연한다는 것 자체가 인고의 나날이었다”고 토로했다.

2년 전에는 재정 압박으로 해체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는 “공석인 이사장을 2년째 찾지 못하고 있다”며 “뜻있는 독지가나 후원자 찾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오페라를 통해 전북과 전주를 세계에 알리는 작업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전주=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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