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공직선거법 개정안 상>
비례대표 75석으로 늘리고 정당 득표율 연동해 의석 배분
범여권 “유럽식 연정 진화” 한국당은 “떴다방 다당제” 반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오른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하 개정안)이 27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다. 상정과 표결을 향한 초읽기에 돌입한 것이다. 막판 여야 합의, 수정 동의안 발의 여부 등은 변수로 남아 있다.
개정안의 핵심은 △의석을 지역구 225명, 비례대표 75명으로 조정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지역구 당선자 확정 이후 정당득표율의 50%에 준해 비례대표 의석 배분) 도입 △석패율제(지역구에서 아까운 표차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구제) 도입 △선거 연령을 18세 이상으로 하향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의원직 총사퇴’까지 언급하며 통과 저지의 결의를 다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주요 쟁점을 살펴봤다.
◇ 비례성, 대표성 보장
개정안의 가장 주된 목적은 ‘투표로 표출된 민심을 더 잘 반영하는 국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표의 등가성’을 높인다거나, 국회의 비례성, 대표성을 끌어올리겠다는 용어로도 표현된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 즉 지역구에서 1위를 한 의원 다수로만 국회를 꾸리는 것은 다양한 정당을 향한 민심을 양당제로 납작하게 왜곡하는 불공정한 규칙이라는 문제 의식에서다.
실제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은 정당득표율 기준 36%를 득표하고도 40.7%(122석)의 의석을 가져가고, 더불어민주당은 27.5%를 득표하고도 41%(123석)의 의석을 얻은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국민의당은 28.7%를 얻었지만 38석(12.7%)을 가져가는 데 그쳤다. 정의당 역시 7.8%를 얻고도 6석(2%)을 얻는 데 그쳤다. 사표(死票)가 절반에 육박한다는 분석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고, 이를 정당득표율에 연동시키겠다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이다.
비례대표를 확대하고 이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성을 올리는 것이 정책 경쟁을 촉발하고, 청년, 여성, 직군, 전문가 등의 대표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은 시민사회와 학계의 공감을 받는 대목이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과거 방식으로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만 대표하거나 지역구 관리에만 매진하는 사람이 아닌, 자기 정당의 정책을 잘 실현할 대표자로 공천된 이들이 국회를 채우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개정안이 지역구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에 불리한 룰이라는 점에 불만을 제기한다. 가령 정당득표율을 30% 얻었는데 이미 지역구로 90석(300석의 30%) 이상을 얻었을 경우, 이 30%의 몫을 어디서 찾아와야 하냐는 주장이다. 한국당은 아예 비례대표 폐지를 전제로 한 지역구 270석을 당론으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례대표 완전 폐지는 비현실적이나 공천 방식의 투명성 강화 등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개정안은 각 정당이 당헌과 당규로 정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추천하도록 하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비례대표 역할론 공방을 피하려면 공천과정에서 객관성, 투명성을 확보할 방안을 보다 고심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 양당구도 해체
개정안을 도입하면 시뮬레이션 결과대로 다당제가 확립될 수 있다는 것도 범여권이 기대하는 효과다. 비례대표제 강화, 구조화된 다당제의 정착, 이를 통한 연정 등이 국회를 보다 진화시키고, 협의의 정치 풍토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다.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떨어질수록, 합의제 민주주의 구현이 불가피하며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등 선진국의 민주주의는 모두 이런 다당제를 기반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거대 양당의 공생 구조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문제로 꼽혀 왔다. 아무리 여당의 실책이 커도, 제1야당이 더 큰 실책을 하면 대안이 없는 데다, 선거법의 구조상 다음 선거에서도 이 두 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거대 양당구조를 해체하는 것이 정치발전의 필수요건이냐며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오히려 나경원 원내대표는 최근 ‘떴다방 다당제’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군소정당이 난립하고 다당제가 혼란을 일으키면 청와대, 정부, 여당을 견제하는 일이 더욱 어려울 것이라 주장했다. 현실적으로는 정의당이나, 우리공화당이 교섭단체로 규모를 키울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국회법은 20인 이상의 의원을 확보해야 교섭단체 지위를 준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역시 “반드시 다당제가 선이고 양당제가 악이라고 규정하고 들어갈 필요는 없다”며 “대통령 중심국가에서 다당제만 채택하는 경우는 없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합의를 보고 대안을 모색하려면 한국당도 ‘지역구 270석’ 같은 비현실적 입장은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논쟁에 대해 하승수 공동대표는 “다당구도가 정치를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은 현재 양당제 국회의 모습 그 자체가 반박한다”고 지적한다. 하 공동대표는 “거대 양당이 서로 발목잡기만 하며, 정책 경쟁보다는 센 지역에서 공천을 받으려는 것에만 집중하는 폐해를 이제는 끝낼 때가 됐다. 양당제에서는 각 정당의 정책경쟁 자체가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고 했다.
◇ 지역주의 극복
유력 정당들이 이념, 정책, 지향 등을 놓고 경쟁하는 다당제가 정착하면, 자연스럽게 각 의원들은 계층, 소수자, 직능을 대표하는 데 집중하고 지역주의가 완화될 것이라는 점도 개정안이 기대하는 변화다. 개정안이 지역구에서 당선을 많이 시키는 당에 불리하고, 군소정당의 원내 진입에 일정 부분 유리하게 설계된 만큼 영남, 호남 등 특정 지역 기반 정당의 독과점을 허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지역구에서 근소한 차로 낙선하면 비례대표로 선발할 수 있는 석패율제를 6개 권역별 득표율에 따라 적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비례대표 의원이면서도 전국 대표성보다는 지역 대표성을 가지게 되는 한계가 있다는 반론도 나온 상태다. 여러 우려를 감안해 제도를 설계하다 보니 아주 파격적인 지역주의 타파 효과를 내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민주당이 호남에서 지역구 의석을 많이 확보해 석패율의 이득을 못 보고, 한국당이 영남에서 마찬가지 룰을 적용 받으면 지역주의를 다소 완화시키는 데 조금은 영향을 줄지 모르겠다”면서도 “비례대표의 총 숫자가 너무 적은 상태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지역주의 완화에 대대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한편에선 인구 수를 기준으로 선거구를 통폐합하다 보니 유독 농어촌 지역의 의석만 많이 줄어들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에서는 실제 호남계 의원들의 반발을 감안해 지역구 225석 대 비례대표 75석의 비율을 조정한 수정동의안(240석 대 60석, 250석 대 50석)을 표결에 붙여 통과시키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정의당은 이런 수정안이 지역주의 타파 취지를 완전히 무색하게 하는 내용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런 고민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면서 비례대표 의석까지 늘리기 위해선 결국 비례대표의 과감한 확대를 동반한 의원 정수 확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에 대한 국민 설득의 과정이 부족했던 점이 아쉽다”고 진단했다.
◇ 의원 정수 논란
‘의원 정수 확대’는 민주당 지도부의 공개적인 선 긋기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개정안 도입을 위해선 지역구 의석수가 28곳이 줄어드는데, 지역구 통폐합이 예상되는 의원들의 반발이나, 농어촌 지역구 축소 등의 우려를 해결하는 동시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현재 300석을 330석으로 늘리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지난달 말 기자간담회에서 “의원 세비 총액을 고정한다는 전제에서 의원 정수 확대를 검토하자는 논의가 앞서 이미 각 당 간에 있었으며, 한국당과도 당시 300석의 10% 범위(30석) 안에서의 확대에 합의했다”고 밝히며 논의를 촉발시켰다. 다만 한국당은 “법적 조치”까지 언급하며 부인한 상태다.
의원 정수 확대는 시민사회와 학계가 공통적으로 꾸준히 요구해 온 정치개혁의 조건이다. 정치개혁국민행동 역시 “현재 국회의원들이 갖고 있는 각종 특권을 내려놓고, 일을 제대로 하는 국회의원들을 더 많이 뽑자는 제안에는 어떠한 이견도 있기 어렵다”는 성명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정수 확대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여전하다. 김형준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현재 우리 정부의 규모, 공무원 숫자, 예산, 행정부 견제의 필요성 등을 감안하면 의원 정수가 360명까지도 필요하다”면서도 “가장 큰 문제는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정활동을 할 여건이 되어있느냐”라고 꼬집었다. 그는 “당론으로 정하면 모두가 거기에 따르고, 결정적 순간에는 원내대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상황을 고치지 않으면, 300명이나 360명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한계는 이런 논의가 표결 직전에 지역구 통폐합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불붙었다는 점이다. 최창렬 교수는 “이론적으로 현재의 정수가 부족하며, 330~340명까지 의원 정수가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면서도 “그런 당위와 이론이 중요한 국면은 아니게 됐다”고 했다. 이어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정치가 불신 받고 있는 현실이 중요하지 않겠냐”며 “국민에게 보여준 것이 없는데 막판 표결을 위해 증원의 당위를 설명해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 복잡한 배분 방식
사소한 쟁점으로는 이번 개정안이 “너무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의원 정수를 고정하면서도 비례대표제 확대의 취지와 지역구 축소의 우려, 거대 양당의 비례대표 확보 방안 등을 모두 감안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하다 보니 연동형, 준연동형, 석패율, 권역별 등의 어려운 용어가 많고 산술식이 지나치게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심 대표는 앞서 이를 “정수를 늘리지 않고 연동률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다 보니 복잡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선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도 나왔다. 심 대표가 “산식(算式)은 여러분들이 이해 못 한다. 국민들은 산식을 알 필요 없다. 컴퓨터를 칠 때 치는 방법만 알면 되지, 그 안의 부품까지 알 필요는 없지 않냐”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끈 것이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 역시 민주평화당 소속 당시 의원총회에서 정치개혁특위 간사인 천정배 의원에게서 산술식 설명을 들은 뒤 “지금 이걸 이해하는 천재가 있냐”고 물은 게 뒤늦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당은 ‘어려운 산술식’ 자체를 공격 지점으로 삼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국민이 혼란스러워 내가 던진 표가 어디에, 누구에게 가는지 알 길이 없다. 국민이 선거의 주인이 아닌 손님이 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학계에서도 비슷한 우려는 나온다. 최창렬 교수는 “석패율과 준연동형, 권역별 등을 도입하면서 제도가 너무 복잡해진 측면은 있다”며 “선거제도라는 것은 국민이 완전히 이해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 국민들에게 도입의 필요성을 더 공들여 설명해야 하는 점은 어려움으로 남았다”고 했다.
정의당 핵심 관계자는 “전격적인 비례대표의 확대 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감대가 아직 부족한 상태에서 비례대표제 취지를 살리면서, 거대 양당도 비례대표 후보를 배출할 수 있도록 50% 연동비율을 적용하다 보니 공식이 복잡해진 측면은 있다”면서도 “선거관리위원회와 각 당 간사 등이 오랫동안 연구한 제도들을 결합한 만큼, 복잡해 보여도 자세히 뜯어서 연구하면 쓸모 없는 조건 없이 잘 설계된 편”이라고 평가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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