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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왜 자꾸 순해지나… ‘도수 16.9’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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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왜 자꾸 순해지나… ‘도수 16.9’의 경제학

입력
2019.11.27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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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로이즈백 이어 처음처럼 16.9도… 회식문화 저물며 도수 낮추기 경쟁 

 “원가 절감 꼼수” 비난 목소리도… 17도 미만, 방송 광고에도 유리 

국내 소주 제품들의 도수변화. 그래픽=송정근 기자
국내 소주 제품들의 도수변화. 그래픽=송정근 기자

“기분 좋게 적당히 즐기는 데 쓴 소주는 부담스럽죠. 원래 쳐다보지도 않던 술이었는데 순하고 부드러운 소주가 나오면서 음주 스타일이 바뀌었습니다.”

국내 이커머스기업에서 일하는 이기원(27ㆍ가명)씨는 주말마다 친구들과 야외에서 바비큐파티를 즐긴다. 이들은 고기와 야채를 비롯해 라면, 즉석음식, 술 등 분담한 먹거리를 각자 온라인몰이나 대형마트에서 쇼핑한 뒤 모인다. 최근 이 모임에 변화가 생긴 건 술이다. 맥주 와인이 대세였던 주종에 소주가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씨는 “소주는 ‘쓰고 맛없는 술’로 생각했는데, 요즘 순한 소주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4월 16.9도로 출시된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이 대표적이다.

순하고 부드러운 술을 선호하는 20,30대 밀레니얼 세대의 음주 문화에 따라 알코올 16도 소주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롯데주류도 다음달 ‘처음처럼’(17도)의 알코올 도수를 16.9도로 낮춰 출시한다. 1950~60년대만 해도 ‘독주’로 여겨지던 소주가 젊은 소비층을 겨냥해 도수가 낮아지며 ‘저도주’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국내 소주의 역사를 살펴보면 거의 절반 수준으로 알코올 도수가 낮아졌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1924년 출시된 것으로 알려진 ‘진로’의 알코올 도수는 35도였다. ‘희석식 소주’가 등장한 1965년 이후 30도 밑으로 내려갔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5년 쌀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서 나타난 소주의 변화였다.

1998년 23도의 ‘참이슬’이 등장하면서 20년 넘게 이어진 ‘25도 시대’가 마감했다. 이후 2006년 롯데주류의 ‘처음처럼’(20도)과 하이트진로의 ‘참이슬 후레쉬’(19.8도)가 출시되면서 두 회사의 소주 ‘도수 낮추기’ 경쟁이 본격화됐고, 결국 16도 소주까지 등장하게 됐다.

16.9도의 진로이즈백은 출시 두 달만에 1,000만병이 팔려 화제가 됐다. 일반적인 녹색병 대신 1970년대 판매되던 투명한 병을 되살린 디자인이 ‘뉴트로’ 열풍으로 이어지며 젊은 층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주류 업계 관계자는 ‘순한 술’ 트렌드에 대해 “최근 회식이 줄어든 대신 ‘혼술’이나 친구ㆍ가족 등 소규모 모임에서 술을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생긴 변화”라고 설명했다. 주 52시간 근무제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등이 시행되면서 접대나 강요된 회식이 사라지는 사회적 분위기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50대 직장인 박성범씨는 “요즘은 부서 회식도 상, 하반기에 한번씩 할 정도로 꺼리는 분위기”라며 “2차, 3차는 없어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트렌드에 편승한 주류 업체들의 원가 절감 방안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희석주인 소주가 원료인 주정(알코올)보다 물의 양이 늘어나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소주 도수가 0.1도 내려가면 주정 값을 0.6원 절감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다. 16도 소주는 지금보다 적극적인 방송 광고가 가능해진다. 1995년 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17도 이상의 주류 광고는 지상파 방송에서 오전 7시~오후 10시까지 방영할 수 없다. 그런데 16도 소주는 이런 규제를 적용 받지 않게 된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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