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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가 쏘아올린 등단작… 순수문학 데뷔 ‘변화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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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가 쏘아올린 등단작… 순수문학 데뷔 ‘변화의 바람’

입력
2019.11.27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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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한달 만에 11쇄… 1년 전 이미 SNS 입소문 

 美 소설 ‘캣퍼슨’ㆍ英 시집 ‘뼈’도 온라인 공개가 출간 데뷔 이끌어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크리스틴 루페니언 '캣퍼슨', 이르사 데일리워드 '뼈'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크리스틴 루페니언 '캣퍼슨', 이르사 데일리워드 '뼈'

1, 2쇄를 합쳐 1만부를 발행했고, 일주일도 안 되어 5,000부를 추가로 인쇄했다. 지난달 25일 출간해 한 달 만에 벌써 11쇄를 찍었다. 장류진(33) 작가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이 가을 문단에 일으킨 작은 돌풍이다. 장 작가는 등단한지 1년을 갓 넘긴 신인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그의 첫 책이다.

하지만 장 작가는 책도 내기도 전부터 스타 대우를 받았다. 등단작인 단편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이 1년 전 온라인에 공개된 직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출판사 창비 홈페이지에 등단작 전문이 공개된 이후 20, 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공감 100배”라는 평을 받으며 SNS에서 입소문을 탔고, 창비 홈페이지가 다운됐다. 누적 조회수는 40만건. 말 그대로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다.

장 작가의 범상치 않은 사연은 최근 순수문학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각변동의 대표적인 예다. 웹툰이나 웹소설처럼 당초 웹이 기반인 콘텐츠와 달리, 출판사 발행 문예지나 신문사 신춘문예 지면을 통한 작가 데뷔 제도가 공고했던 한국 문단에서조차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에서의 화제성이 실제 출판에까지 큰 영향을 끼친 사례는 많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는 SNS를 발판 삼아 꿈의 150만부 고지에 올랐고,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엮어 낸 ‘90년생이 온다’는 올해 출판계 최대 화제작으로 꼽힌다. 이런 성공 사례는 에세이나 기획도서에만 한정된 것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SNS를 통해 이름을 알려 문단에 나오거나 온라인을 바탕으로 베스트셀러 자리를 노리는 순수문학 작품이 등장하고 있다.

장류진(왼쪽부터), 크리스틴 루페니언, 이르사 데일리워드. 장류진 작가 ⓒElisa Roupenian Toha ⓒ마이크 코발 제공
장류진(왼쪽부터), 크리스틴 루페니언, 이르사 데일리워드. 장류진 작가 ⓒElisa Roupenian Toha ⓒ마이크 코발 제공

SNS 입소문을 기반으로 한 신인 작가의 등장은 해외에서 더욱 활발하게 이뤄진다. 문예지와 신춘문예라는 공고한 등단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번역 출간된 미국 작가 크리스틴 루페니언(38)의 소설 ‘캣퍼슨’이 대표적인 예다. ‘캣퍼슨’은 미국의 대표적인 주간지 중 하나인 뉴요커를 통해 2017년 공개됐다. 온라인에 소개된 지 일주일이 안 돼 뉴요커 발행 픽션 중 온라인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다. 국내 출판사는 ‘조회수 450만건, ‘뉴요커’에서 가장 뜨겁게 읽힌 소설’이란 문구로 이 소설을 소개하고 있다. 루페니언의 다음 소설과 첫 소설집 발행권 확보를 위해 11개 출판사가 경매에 뛰어들었다. 호가는 100만달러 이상이다. 무명이었던 루페니언은 ‘캣퍼슨’으로 단박에 스타덤에 오르며 미국에서 가장 주목 받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이 됐다.

시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영국 시인 이르사 데일리워드(30)의 시집 ‘뼈’는 인스타그램에 올린 시들을 엮어 자비출판 한 책이다. 화제 속에 베스트셀러가 되자 유명 출판사 펭귄북스가 정식 출간했다. 모델 겸 배우이기도 한 데일리워드는 팔로어 15만명을 거느린 인플루언서이다. 출판과는 무관하게 이미 독자 15만명을 지닌 시인인 셈이다. ‘뼈’는 “모든 흑인 소녀들이 고마워할 단 하나의 시집”이라는 평과 함께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SNS에 쓴다고 해서 결코 작품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가 됐다.

이르사 데일리워드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시(왼쪽)와 이르사데일리워드. 인스타그램 캡처
이르사 데일리워드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시(왼쪽)와 이르사데일리워드. 인스타그램 캡처

SNS는 퀴어 소설이나 장르문학 등 다양한 개성을 지닌 작품의 출간을 돕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뼈’의 국내 출간을 담당한 정혜림 문학동네 해외문학1팀 편집자는 “기존 제도권 문학이 포섭하지 못했던 소수 취향의 작품도 온라인에서 먼저 화제가 되면 출간이 수월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SNS의 ‘픽’이 출판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담당한 전성이 창비 한국문학팀장은 “’일의 기쁨과 슬픔’의 경우 신인의 작품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SNS 홍보를) 열어놓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실제 출간은 무엇보다 작품성이 우선이고, SNS에서의 입소문은 홍보를 할 때 활용 측면에서 고려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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