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어르신들의 삶 속으로… 여행 다녀온 이야기 풉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어르신들의 삶 속으로… 여행 다녀온 이야기 풉니다”

입력
2019.11.27 04:40
28면
0 0
전시 ‘다녀왔습니다’를 기획한 육끼(왼쪽부터) 라미 호미가 다원예술팀 ‘로컬익스프레스’가 만든 설치작품 안에 들어갔다. 올 봄부터 꾸준히 영등포 로하스요양병원를 찾은 청년 작가 4인이 입원 환자들을 위해 지난달 각 병실을 돌아다니며 가을 운동회를 열고 영상을 찍어 만든 작품이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전시 ‘다녀왔습니다’를 기획한 육끼(왼쪽부터) 라미 호미가 다원예술팀 ‘로컬익스프레스’가 만든 설치작품 안에 들어갔다. 올 봄부터 꾸준히 영등포 로하스요양병원를 찾은 청년 작가 4인이 입원 환자들을 위해 지난달 각 병실을 돌아다니며 가을 운동회를 열고 영상을 찍어 만든 작품이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남편을 떠나보낸 지 1년이 된 이옥순 할머니는 커피 한잔을 끓여 죽은 남편 사진 앞에 두었다가 식은 후 마시는 의식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10년간 성남문화원의 극단 ‘희희낙락’에서 활동한 이씨는 24일 자신의 이런 일상을 무대에 올린 ‘오래된 나의 연극’(원지영 작ㆍ연출)에서 주인공을 맡아 관객과 만났다.

#50년째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사는 이종은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비행사로 일했다. 대형 여객기를 몰고 창공을 가르던 이씨의 젊은 시절과 반백년 성북구 변화상은 다큐멘터리 ‘성북비행’(이준용 연출)으로 태어났다.

청년예술가들이 70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이를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다녀왔습니다’를 선보인다. 서울시가 올 3월부터 ‘노인 이야기 들어주는 청년예술가 프로젝트’로 마련된 전시는 이달 30일까지 성북창작터에서, 다음달 4일에서 14일까지 영등포 서울하우징랩에서 열린다. 25일 성북창작터에서 만난 기획자 육끼(본명 황지원·44), 호미(정연재·33), 라미(김보람·29)씨는 “어르신 개인의 이야기가 모여 마을의 역사, 사회적 역사가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삶을 조망하고 구체적인 사회의 모습을 그리는 데에 초점을 둔 전시”라고 말했다.

20년차 문화기획자로 활동 중인 육끼가 협업 전시를 선보인 건 재작년부터. 민중미술가 김정헌씨가 청년예술가와 노인 세대가 소통하고 함께 작품을 만드는 장기 프로젝트 ‘이야기청’을 제안했고, 황씨가 기획을 맡으며 2017년 연말에 전시 ‘이야기담는 집’을 열었다. 황씨는 “경청과 구술활동을 예술로 재구성하고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작업이 이야기청 프로젝트”라고 정리했다. “평소에 제가 하는 문화 기획이 제 삶과도 맞닿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40대가 되니 자연스럽게 ‘나이듦’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 제가 더 나이 들면 해야 할 일을 탐구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3년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참여한 예술가도, 어르신도, 기획자도 노인과 젊은 세대에 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었다. 황씨는 “청년세대는 막연히 ‘어르신들과 말이 안 통할 거다’ 같은 고정관념이 있는데 오래 소통해보니 오히려 미래를 얘기하고 본인의 삶을 준비하고 싶어하셨다. 어르신들도 ‘요즘 젊은 애들이 버릇 없을거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오랜 시간 얼굴 보면서 마음을 열고 살갑게 챙기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덧붙였다.

전시 ‘다녀왔습니다’를 기획한 호미(왼쪽부터) 육끼 라미씨.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전시 ‘다녀왔습니다’를 기획한 호미(왼쪽부터) 육끼 라미씨.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프로젝트 3년째인 올해는 참여 예술가를 공개 모집했다. 39세 이하 청년작가를 모집하는데 100명 이상이 지원했고, 시각예술, 설치예술, 출판, 무용, 공연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19명이 선정됐다. 인디밴드 출신의 정씨, 조각작업을 병행하는 김씨도 기획에 합류했다. 이들도 이야기청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노인세대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했다. “주변 어르신 중 태극기부대가 많아 (노인세대에) 거부감이 많았다”는 정씨는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이 뭘 물어보면 왜 그렇게 화부터 내는지 알게 됐죠. 일단 잘 안 들리니까 목소리가 커지고요. 당신 세대에서 당연했던 일을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답답한거죠). 아버지가 아주 가부장적인 사람이거든요. 너무 강해서 피하는 존재였는데 어느 순간 약해진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이제 아버지의 모습이 온전하게 보이는데, 제가 다가와 말하기를 기다린 것 같더라고요.”(라미) 호미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외할머니께 전화를 자주 드리게 됐다. 프로젝트 참여하는 어르신들 만날 때마다 ‘정작 나는 내 가족을 챙기고 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비(월 70만원)를 지원받으며 성북구·영등포구의 노인종합복지관, 요양병원, 생활예술문화센터 등 관계기관(시설)의 협조를 받아 어르신들과 정기적으로 작품을 만들면서 성사됐다. 기획자들의 다음 계획은 창작 활동비 지원 기간이 끝나고도 청년예술가와 어르신들이 만나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

황씨는 “내년에는 노인복지회관 등 어르신들이 자주 가는 장소 한쪽 공간에 청년, 노인세대가 만나는 장을 마련해 예술가들이 이야기를 듣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