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체포된 피의자 16만4천명
“재정 부담 크겠지만 감당 못할 수준 아냐”
범죄 혐의가 어느 정도 입증돼 수사기관에 체포된 순간부터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해야 하다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재정 부담이 뒤따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라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인권위는 26일 국회의장과 법무부 장관에게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체포된 모든 피의자’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앞서 피고인에만 한정된 국선변호인 적용 대상을 일부 피의자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내놨다. 미성년자, 농아자, 심신장애가 의심되는 자나 사형ㆍ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이 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체포된 피의자만 예외적으로 국선변호인을 붙여줄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인권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국선변호인 적용 범위를 일부 피의자로 제한하지 말고 ‘체포된 모든 피의자’로 넓히고, 미성년자, 장애인 등은 보다 두텁게 방어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체포여부와 상관없이 피의자가 된 시점부터 국선변호인 조력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법무부 개정안처럼 국선변호인 적용 범위를 일부 피의자로 한정하는 건 애초 제도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에 체포되면 외부와의 소통이 사실상 단절돼 방어권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체포된 순간부터 국선변호인을 붙여줘야 피의자가 인권침해 당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재정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에 입건된 174만명 중 체포된 피의자는 16만4,000여명에 달한다. 경제 사정이 안 좋은 이들만 선별해 국선변호인을 붙여준다고 해도 지금보다 국선변호인을 대폭 늘려야 한다.
인권위는 이에 대해 “국가가 형사절차에서 모든 사람의 공평하고 실질적인 방어권 보장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국선변호인 제도를 추진하고 있는 취지를 감안할 때 재정적 부담이 현실적으로 수용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권위는 변론의 공정성 시비가 나오지 않도록 국선변호인 제도 운영은 경찰과 검찰 등 다른 정부기관으로부터 독립된 제3의 기구가 맡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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